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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Apr 07. 2024

육십일. 수고했어 오늘도

카레라이스


“저녁에 카레나 먹을까?”


마트에서 장 보고 들어가는 길에 집에 있는 재료를 생각하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카레 좋지, 아까 산 소시지 구워 올리면 되겠네. “

“그래, 여보가 한다고?”

“응?”

“왜~파리에서는 카레 자주 해줬잖아, 잘하면서. “


그냥 던져본 말인데 신랑이 덥석 물었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 한 번 해?”

“(짝짝짝)”


남편은 미션을 받으면 지체 없이 완수하고자 하는 성격이다.

아직 밥시간까지는 시간이 충분한데도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장 본 것들을 정리하고, 몇 개 있던 설거지를 끝내 주방을 말끔하게 해 놓고 재료 손질에 들어갔다.

커다란 양파 두 개를 채 썰어 한참 볶아 캐러멜라이징하고, 그 사이 돼지고기 다짐육을 해동하고 당근과 감자 손질을 한다.

나는 내 성격처럼 요리도 느긋하게 음악이나 라디오를 켜 놓고 하는 반면, 남편은 파바박 집중해서 ‘끝내는’데 초점이 있다.

고형 카레와 육수를 부어 녹이고 뭉근하게 불을 줄여놓고 나서

내가 오전에 부탁했던 화장실 바닥 청소를 하러 들어갔다.


슥슥슥,

수세미가 바닥을 시원하게 긁는 소리가 규칙적이고도 빠르게 난다.

이것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3분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카레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남편은 소파에 가서 앉았다.


프랑스에서는 코로나 시국인 것도 있었지만, 회식 문화가 없고 주말에는 일에 관련한 연락도 거의 없기에 남편은 상대적으로 생활에 여유가 있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카레, 볶음밥, 파스타 등을 했고 거의 모든 집안 청소도 도맡아 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잦은 회식에, 주말에도 가끔 급한 일을 처리하고 출장도 종종 다니면서 심신이 지쳐버렸는지 요리는 놓은 지 오래,

저녁에 설거지와 주말에 화장실 청소 정도를 하고 있다.

오늘 재료 손질부터 밥 짓기, 달걀 프라이와 소시지까지 혼자 다 해서 상을 차려준 것은 한국에서 아마 처음인 듯하다.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어?‘

“오랜만에 남편이 해주니까 맛있지.”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남편은 족욕물을 받아두었고, 적당한 온도가 될 때까지 자기 발을 담가 기다렸다가 나를 불렀다.

내가 발을 담그고 나서, 먼저 자겠다고 들어가는 남편 뒷모습을 보니 주말인데 잘 못 쉬었나 싶어서 마음이 좀 쓰인다.

요리도 청소도 달콤한 연애 과정의 하나였던 파리 생활에서, 곧 세 식구가 되는 무게 있는 한국에서의 삶이 더욱 대조되는 오늘.

곤히 잠든 우리 가장 머리를 쓰담쓰담 쓸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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