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프 브르기뇽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이 시간을 어렵게 맞추고 연가를 내서 나를 보러 먼 걸음을 했다.
출산 전후 몇 개월 못 볼 예정이고, 내 결혼식 이후 다 같이 우리 집에 온 적도 없고 해서 날을 잡았다.
내가 요리를 배운 이후 프랑스 요리를 해 줄 기회가 없었던 터라 만삭이지만 어제부터 쉬엄쉬엄 준비를 해두었다.
친구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지만 먹어보지 않은 ‘비프 브르기뇽’이다.
요리 영화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줄리 앤 줄리아’에서도 비중 있게 나온 메뉴이기도 하여,
이십 대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나를 프랑스 요리에 매료되게 한 영화이기도 했다.
본래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해당 지역 와인을 이용해 장시간 푹 끓인 소고기 스튜의 일종인 비프 브르기뇽은
우리네 갈비찜처럼 시간이 상당히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갈비찜처럼 포크만 닿아도 찢어지는 부드러운 고기를 먹는 것이 포인트인 요리라 어느 정도의 소스와 육수, 시간만 여유가 된다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다.
좋은 레드 와인은 아니지만 충분한 와인에, 농축 토마토 페이스트와 토마토 퓌레, 잘 익은 토마토 그리고 자투리 채소로 만들어둔 채수.
구워낸 소고기에서 나온 육즙과 세 시간쯤 오븐에서 천천히 익혀냈다.
따로 버터에 굴린 당근, 감자, 양파를 후반부에 넣어 부서지지는 않게 하지만 육수맛은 스며들도록 하고,
다진 파슬리를 넣어 마무리한다.
레드 와인과 먹어야 제 맛이지만 그녀들은 소맥에도 근사하다며 엄지를 들었다.
네 명은 이미 한 아이의 엄마들. 남편들에게 잠시 아이를 맡기고 우리끼리 모인 오늘은 고등학생 때와 다름없이 유치하고 즐겁다.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도 끊임없이 웃을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들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이.
‘그냥’ 물어보는 게 아니라 진정 어린 관심과 걱정으로 나의 컨디션, 준비상태를 묻고 매 순간 임산부 배려부터 한다.
이미 낳아봤으면서도 내 배에 손을 얹고 태동을 한참이나 기다리며 감동하며, 우리 아이 태명을 부르며 벌써부터 예뻐하는 친구들에
겉으로는 쑥스러우니까 티를 안 냈지만 속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저 몇 시간인데 왁자지껄했던 집이 허전하기 그지없다.
밝게 웃으며 배웅했지만 아쉬움이 뚝뚝.
친구들이 손을 얹었을 때는 이상하게 조용하더니, 뱃속 아가와 둘이 집에 있자니 많이도 움직이는 것 같다.
낯 가리는 듯 아니면, ‘엄마, 나 있어요’라고 위로하는 듯.
남은 날들 더 힘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