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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Apr 29. 2024

삼십구일. 요리 태교

앤초비

 

봄철이 가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앤쵸비 만들기, 생멸치 절임이다.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지만 아직 국내에 판매되는 앤쵸비 제품은 종류가 매우 한정적이고 값이 꽤 나간다. 그런 이유는 차치하고서라도 제철 통통하고 싱싱한 멸치로 직접 절임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오늘이다.


멸치잡이 어선이 들어오는 항구에 가니 그야말로 멸치 대잔치가 벌어져있다. 선착장 부근에서는 낮시간이 넘어가는 시각에도 그물에 걸린 수천 마리 멸치들이 어선 위로 튀어 오르고 있었다. 어부들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듯 대여 섯명이 똑같이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손과 발을 굴러가며 은빛 멸치를 솎아냈다. 그 광경을 처음 가까이서 보는 도시에서 삼십몇 년 산 나 같은 여자한테는 퍼포먼스 같다. 새벽부터 나가 저 수많은 멸치를 잡아 올리고도 아직도 일이 끝나지 않은 어부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은 얼마나 고될지 헤아릴 수 없지만 적어도 만선의 배가 조금은 그들을 다독여주고 있을까.


길게 늘어선 점포들은 대량의 멸치를 박스채로 내놓고 있었는데 그런 것들은 비늘이 반 이상 벗겨지고 살이 짓이겨진 멸치들이다. 젓갈을 담그는 데 제격이다. 내가 찾는 생멸치는 눈알도 맑고 비늘도 깨끗한 놈들, 다행히 자그마한 가게들은 소쿠리에 담아 생멸치를 판다. 멸치 3킬로그램 정도를 얼음을 깔아 포장해 들고 오니 벌써 신이 났다.


찬 물에 한 번 헹궈낸 멸치의 대가리와 내장, 척추뼈만 제거한 다음 나비처럼 양 면으로 살을 펼쳐준다. 소금, 식초, 물을 배합한 식초 물에 푹 담가 3-4시간 산을 이용해 멸치를 익힌다. 선홍빛이 사라지면 물은 버리고 포도씨유를 멸치가 잠길 때까지 부어 넣고 통후추, 월계수잎을 더해 향을 입힌다. 써놓고 보면 어렵지 않지만 멸치 손질 이후 반나절의 시간은 필요한 작업, 생멸치를 손질하고 나면 온 주방에 내 손에도 머리에도 비린내가 벤다. 하지만 마리네이드 된 멸치 반 쪽을 맛보니 수고가 전혀 아깝지 않게 아름다운 맛이 난다. 냉장고에 두 통 가득 앤쵸비를 넣으며 출산 전까지 넉넉히 먹겠구나 싶어 콧노래가 막 난다.


내가 사서 고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의 눈에도 그래도 내 모습이 즐거워 보이긴 했나 보다. 반나절 사부작거리며 노동 아닌 노동을 했어도 기분 좋게 저녁을 지어냈더니 남편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게 바로 요리로 하는 태교, 태교 뭐 별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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