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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Dec 02. 2019

14_자취 안 하는 게 낫겠어

모차렐라 치즈 커리돈까스&연근피클


출퇴근 왕복 세 시간,

푸시맨이 필요할 듯한 1호선과 2호선을 타야 하는 동생이 자취를 알아보고 있다.

그 마음 십분 이해하니까 며칠 전에 방 보러 가는 동생 따라가서 같이 둘러보기도

조건이 나쁘지 않은 방이 몇 개 있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자 해서 계약하지 않고 돌아왔다.

일단 전세를 하면 2년은 기본이니까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다.

입사한 지 이제 3개월이니 고정지출이 나가는 게 부담이 안 될 수가 없지.

엄마도 저축하기 힘들어지지 않겠냐 하시고, 아빠도 굳이 나가라 하는 입장도 아니시다. 지방도 아닌데 굳이 자식을 밖에 살게 하고 싶은 부모가 드물 테다. 나는 동생 밥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분명 편의점이나 배달 음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테니까.




집 계약하면 금방 들어가야 하니까,

오늘이 마지막 도시락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맛있는 거 해줘야지ㅡ

 정육점에서 돼지 안심살을 잘 펴달라고 부탁했다.



최대한 칼로 툭탁툭탁 연육 작업과 동시에 더 넓게 펴주기.

두 덩이는 소금, 후추만 간단히 하고

나머지는 커리, 카얀 페퍼 그리고 생강가루를 입혀줬다.


그리고 모짜렐라 피자치즈랑 파마산 치즈를 갈아 올려주고 돌돌돌 잘 말아주기.

고구마 무스도 넣을까 했는데 고깃덩이가 작기도 했고, 커리와 치즈의 맛을 고구마가 너무 잡아먹을 것 같기도 하고.

빵가루를 입...

달걀물을 깜빡했다.

달걀물 고루 입힌 다음에 다시 빵가루 옷 입혀 완성.

준비해놓고 잠들기 전에 생각났는데, 밀가루도 깜빡했다. 만들고 있는데 엄마 아빠가 집에 들어오셔서 정신이 잠깐 없었나... 보다고 핑계를 찾는다.

네 가지 치즈 돈가스랑 하나는 돌돌 말기에도 좀 작아서 그냥 넓적 돈가스.

랩에 잘 싸서 바로 다음날 할 것만 냉장에, 나머지는 냉동고에 보관하기.

한 번 만드는 김에 우리 조카들 줄 것도 해 놓은 이모라니까~



이튿날 새벽,

깜빡한 밀가루 옷을 보충하기 위해 10분 더 일찍 일어나서

 밀가루에 물을 개 얼른 덧입혀 빵가루도 한 겹 더했다.

덕분에 원래보다 조금 두꺼워져 버렸지만.

기름 퐁당. 맛있어져라!

자글자글 튀겨지는 소리가 요새 왜 이리 좋고, 고소한 기름 냄새도 코를 간지럽히는 것도 좋아

튀기면 다 맛있지.

잘 튀겨야 맛있다. 말이 쉽지, 쉽지 않은 튀김 조리법이라 요새 자주자주 연습을 해보고 있다.

집밥인데 굳이 기름 많이 먹는 튀김을 하는 게 건강식에 반하는 것 아닌가 했는데,

“잘”튀기면 사 먹는 것보다 깨끗한 튀김을 먹는 거니까 무조건 나쁜 조리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의 바뀜.

노릇하게 구워지면 키친타월에 한 김 식혀주고.

얼른 잘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말이다.

며칠 전에 담가 둔 연근피클.

유자청과 식초로 담가 연근의 하얀 속살을 그대로 남겨뒀다.

아직 나도 맛을 안 봐서 사실 어떤지도 모르고 일단 넣어준다.

밥 위에 돈가스, 연근이랑 브로콜리로 빈틈 채우고 후리가케와 실고추 고명.

이걸 반으로 자를까, 한 입 크기로 자를까, 이렇게 담아 놓고 몇 초 고민을 한다.

아직 따뜻해서 지금 자르면 치즈가 다 흘러나올 것이라 점심때쯤엔 딱딱하게 굳어있겠지,

모양을 위해 자르려니 먹는 동생을 위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통 돈가스로 간다.

그렇게 보니 돈가스 같지가 않지만.

유자가 살짝 묻은 연근이 내심 마음에 드는데, 사실 동생은 연근이 별로 안 좋단다.

 미안, 그건 몰랐어. 오늘은 가져가 그냥, 다음에 안 넣을게

2단의 후식 칸엔 어김없이 단감이 들어갔고, 키위랑 요구르트, 로이커 와플 과자.

어디선가 본 단감 예쁘게 깎기를 했는데 통에 딱 들어가서 만족스럽다.

모서리만 살짝 정리해주는 건데 큰 수고 없이 다소곳하게 정성스러워 보인다.

물론 쓸데없이 버리는 과육이 조금 생기기는 한다.

잘라먹을 수 있게 칼도 챙기고, 눅눅해지지 않게 돈가스 소스도 따로 넣어줬다.

케첩, 버터, 간장, 생크림, 설탕, 우유로 만든 수제 소스. 급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괜찮던 소스.

단면이 궁금하니까 하나는 잘라봐야겠다.

길쭉하게 자르는 게 예쁘더라고ㅡ 그래야 단면이 깔끔하고 속이 잘 보인다.

소스 곁들여서 엄마 아빠 아침에 맛보시게 두었다.

커리향과 살짝 매운기가 올라와 맛있다고!

동생 인증샷




자취는 보류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장단점을 비교해 본 나름의 결과였을 테다.


"도시락 먹기 위해서라도 자취는 일단 안 해야겠다"


라는 것은

내가 들은 마음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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