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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r 29. 2020

아쉬운 3월, 프로방스 홍차 한 모금

마리아주 프레흐 티타임

이렇게 아쉬운 3월이 가고 있다.

무심하게도 새싹은 돋아나고 봄꽃들은 작년처럼, 재작년처럼 아니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중이다.

테라스에서 저 멀리 보이는 개나리와 목련나무를 바라보자니 마음이 아플 지경이다.

왜 이렇게 햇살은 눈물 나게 따듯하기까지 한 걸까.

파리의 봄을 테라스에서만 맞이하려니 미안해, 꽃이라도 그려진 찻잔에 지금 가볼 수 없는 프로방스 향을 입은 얼그레이를 우려 본다.


베르가못과 야생 라벤더가 블렌딩 된 '마리아쥬 프레흐'의 홍차다.

다들 '임페리얼 웨딩'을 사던데, 바닐라 향은 정말 좋지만 차로 우려먹는 건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편.

아쌈이나 다즐링과 같은 클래식한 홍차도 판매하지만,

프랑스의 색깔을 입은 무언가를 맛보고 싶어서 이 아이를 선택했다.

이외에도 종류는 물론 매우 많다,

홍차보다는 녹차를, 녹차보다는 루이보스를, 또 그보다는 커피를 좋아해서 차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나인데도 이 한 잔이 꽤나 고급지게 느껴진다.

잘 모르는 홍차에 관하여보다는,

이 홍차를 선택하게끔 한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 Provence를 살짝 살펴본다.


론 강 하류 유역의 휴양지 일대,  처음으로 로제 와인을 생산했다는 지역이다.

프로방스는 옛 지방명이고 지금은 부슈 뒤 론, 바르, 바스잘프, 보클뤼즈, 알프 마리팀 5현에 해당한다.

과거 로마 제국에 형성되었던 지역인데, 아비뇽, 아를, 마르세유, 니스 등 프랑스인들은 물론이고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도시들이 다 있다.

아름다운 해안과 따듯한 기후로 지금은 바캉스 도시들로 자리 잡았지만,

중세에는 3개 다른 왕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9세기에는 아랍계 해적, 노르만인들의 침략, 14세기 대학살 등 몸살은 다 앓은 역사를 갖고 있다. 해서 크고 작은 고성들이 많이 남아 있기도 하다.

16세기에 비로소 프랑스령이 되고 17세기에 본격적으로 와인, 밀, 오 리브 등을 생산하기 시작해 18세기 후반에 번성한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19세기에는 큰 번영의 시기를 즐겼으나 세계 1, 2차 대전으로 또 한 번 고난을 겪은 프로방스.  다 뜯어고쳐서 새단장을 하고 난 1940년대에 문화적으로 재탄생하고자 칸 영화제, 아비뇽 연극 축제 등 문화축제로 도약해 오늘날에 이른다.

(살짝 살펴보려 헀는데 간추리고 간추려도 길어지는 역사가 있더라)


따듯하고 건조한 지중해 기후로 양과 염소 기르기에 좋은 지역이다.

해산물이 풍부하고 포도, 살구, 딸기, 체리, 멜론 등 질 좋은 지역 과일도 많다.

라따뚜이, 니스 스타일 스튜(Daube), 부야이베스(Bouillabasse), 알리오(그 친근한 마늘 파스타의 그것) 등 남부지방 특색요리들도 넘쳐나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한다. 이탈리아 북부와 접해있어 이탈리아 요리법도 많이 섞이게 된다.


전통적으로 로즈메리, 타임, 마조렘, 그리고 라벤더 등을 섞은 말린 허브를 요리에 많이 써왔다. 1970년대에 이것을 상품화시켜 '프로방스 허브'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다른 것들은 프랑스 어디에서나 쓰이는 허브인데 이 라벤더의 신비로운 보랏빛과 특유의 향이 프로방스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 허브 믹스를 마지막에 살짝 뿌려주는 것만으로 프로방스 작은 마을을 맛보게끔 하는 마법을 부리는 것.

새삼스럽게 느끼는 바이지만, 요리에는 비교적 자그마한 부분, 향신료와 허브 하나가 요리 전체 느낌을 바꾸기 쉽다. 요리의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다면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손톰만한 양으로 이국적인 맛을 내는 귀여운 트릭이 되기도 하는 바이다.


라벤더 잎이 작은 티망도 거슬러 남아있다


차 한 잔으로 지역 공부를 하게 만든 라벤더 몇 잎들.

고흐, 세잔, 마티스, 르누아르, 피카소 등 수많은 작가와 화가들을 끌어들인 아름다운 마을들이 있는 곳.

라벤더가 들판을 꽉 채울 때쯤에는,

 당일치기 여행을 갈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래보는 한 모금이다.



나의 아이, 누이여, 부드러움에 빠져들어라.

거기에 가서 같이 살아라....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질서와 미,

사치, 고요, 관능이다.

-샤를르 보들레르 '여행에의 초대' 중

19세기 파리 대도시 우울에 힘들어하던 시인 보들레르,

오늘은 전세계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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