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의 열애
바람난 수요일, 나는 아침부터 분주해졌다. 느릿했던 아침 식사를 서둘러 먹고 집안일도 대충 끝내고, 골프 연습장과 헬스장 두 곳에서 매일 하는 운동도 후다닥 끝냈다. 직장 다닐 때 몸에 밴 민첩성을 되찾아 하루 종일 늘어져 있던 일정을 반나절에 해치웠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서울 가는 버스 시간을 검색했다. ‘도착 예정 정보 없음’ 1302번 빨간 버스는 집 앞에서 타면 서교동 강의실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최선의 대중교통인데 배차 간격이 너무 길다. ‘아직 멀었군.’ 핸드폰을 내려놓고 틈새를 이용해 책을 펼쳤다.
기자가 되고 싶은 자유분방한 젊음을 가졌던 나는 여러 사정으로 생각에 없던 교사가 되었다. 연예인도 아니면서 남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고 말 한마디도 조심하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답답하고 경직된 직업이었다. 마음 한쪽에서는 일탈의 자유를 꿈꿨지만, 새가슴이 되어버린 나는 길들여진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승진이 가까워졌을 때는 휴일도 반납하고 10시 넘어 퇴근하기가 일상이었다. 7년도 넘는 시간을….
민통선 가까운 섬에 승진 발령 난 후 3년 간의 생활은 몹시 외로웠다. 겨울이면 밤이 빨리 찾아와 무서워 나가지도 못하고 방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집 근처 큰 학교로 발령 난 후에는 일이 다시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 만족시켜야 하는 감정 노동자였던 나는 코로나를 맞아 예민해진 사람들로 인해 지쳤다.
그렇게 41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직장에서 원하는 틀에 안성맞춤인 사람이 되었지만, 마음은 더욱 허전해져 갔다. 정년을 일 년 남겨놓고 명예 퇴임을 신청했다. 지친 몸도 돌보고 출산을 앞둔 딸아이의 곁에 있고 싶었다. 직장 동료들은 부러워하며 자유인이 되면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냥 쉬고 싶다.’ 대답은 늘 같았다.
퇴임을 하자 쳇바퀴 돌던 24시간을 내 맘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드디어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었다. 가족의 잔소리나 의중 따위엔 귀 닫고 눈 감았다.
모든 것에 나를 우선으로 두기로 했다. 같이 퇴임한 친구들과 해방일지를 쓰러 해외여행을 다니고, 계절 좋은 날 제주 올레길을 걷는 것도 행복했다.
내가 정신없이 일에 취해 있던 대낮에 카페에서 한가로이 차를 마시며 헐렁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평일 백화점에 쇼핑온 한가한 사람들의 북적거림은 예상치 못한 풍경이었다. 나도 그 헐렁함과 한가함 속에서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좋았다.
2년을 정신없이 놀면서 쉬고 나니 일탈에 대한 갈증이 좀 사라졌다. 아침 일찍 출근하지 않는 것이 행복했고, 눈 많이 오는 날이나 장대비 퍼붓는 장마철에 빗속을 뚫고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 좋았다.
느긋하게 일어나 눈과 비가 내리는 창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에 감사했다. 운동하고, 친구들 만나고, 책 읽고, 영화 보고, 그림 그리고, 여행 가고, 퇴임 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는 소망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남의 일처럼 여겨지던 것들이 내 것이 되자 점차 하고 싶은 일들이 줄어들고 시들해졌다. 쉬는 것이 길어지니 직장 생활처럼 또 같은 날들이 반복되었다. 운동하고, 친구 만나고, 책 읽고, 여행 가고 …,
맘 편히 놀고 있는 평온한 일상이 여전히 좋았지만 뭔가 아쉬움이 일었다. 보람을 느끼며 계속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찾던 중 여행작가학교를 알게 되었고 기다리기 조급해진 마음에 글촌 글쓰기 강의를 덥석 물었다.
다시 검색하니 도착 예정 20분 전. 옷을 챙겨 입고 걸어서 5분이면 닿을 버스 정류장으로 미리 나갔다.
글쓰기 수업에 가는 날마다 날씨가 매서웠다. 바람난 이에게 강추위와 긴 기다림의 버스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버스에 오르면 도시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앞자리에 앉는다. 작가님이 알려주신 일상의 훈련을 하기 위함이었다. 관심 없던 간판이나 광고 문구를 관찰하고 글감 고르기 연습도 해 본다. 운전할 때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일상이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80여 분의 긴 시간이 나를 서울로 지루하지 않게 옮겨 주었다.
너무 이르게 도착한 날은 근처 카페에 들러 지난 강의 자료를 펼쳐 봤다. 나의 첫 원고는 유혈이 낭자하게 첨삭되었다. 교정이 끝난 원고는 큰 채찍으로 타작을 끝낸 후 남은 알곡들처럼 검게 도드라졌다. 글쓰기 초보가 첩첩 쌓았던 군더더기 껍질을 벗겨놓으니 영양가 있는 알갱이만 남았다.
글쓰기를 배워 본 적이 없는 나는 부끄럽기보다 기쁜 깨달음을 얻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학교 다닐 때 배운 한자의 의미가 진심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배움의 기쁨은 그동안 뭔가 아쉽던 하루를 채워 주었고 생활의 활력이 되었다.
‘오늘은 어떤 글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강의실로 향한다. 10여 명의 회원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가졌다. 만남을 거듭할수록 글이 작가와 닮아있음을 발견하였다. 어떤 이는 통통 튀는 언어로, 어떤 이는 빠른 속도감으로, 때론 담담한 어조로 편안하게 글 타래를 술술 풀어놓는다. 글은 그 사람을 담는 거울이었다.
겸손, 진솔, 겸허를 담아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강사님 말이 힘을 얻는다. 살아온 경험이 제각각인 회원들의 분신이 오늘도 흰 종이에 담겨 따끔한 합평을 견뎌냈다.
술과 웃음과 대화로 서로를 알아가는 뒤풀이까지 끝나고 집에 오면 시간은 목요일로 훌쩍 넘어가 있었다. 10시면 자던 나에게 이 또한 기분 좋은 일탈이다.
바람 난 연인들이 옷을 자주 사듯 글쓰기와 신바람 난 요즘 책을 사들이고 도서관에서도 책을 많이 빌렸다. 과제로 내준 글쓰기를 하며 독자들의 마음을 빼앗을 문장을 고르느라 씨름한다. 뒤늦게 바람난 글쓰기와의 열애가 지속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