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간이 있었기에 더 소중한 지금
40여 년간 울리던 6시 알람 소리.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살살 다독여 침대를 벗어나
후다다닥 동시다발적으로 출근 준비를 끝내고
더디 내려오는 숫자에 시선을 고정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그런 안절부절못하던 아침이 어느덧 가고
알람 없는 늦은 아침까지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음악과 함께 누워
침대와 뒹굴뒹굴 이 시간
퇴직이 준 여유. 좋다.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바쁜 일상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 시절
부실해진 몸은 피곤을 얹어 늘 허덕거렸다.
양배추, 파프리카, 당근, 삶은 달걀, 방울토마토,
연근, 단호박…
몸에 좋은 것만 골라 담아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얹고
나를 대접하는 우아한 상차림으로
느긋하고 평화로운 아침 식사
퇴직이 준 여유. 좋다,
늘 아이들과 함께 했던 점심시간
급식실의 소란함과 아이들 챙기기에 급급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
"선생님, ㅇㅇ가 먹기 싫다고 김치를 내게 줬어요."
"선생님, 얘가 나한테 밥풀 던졌어요."
쉴 새 없는 아이들의 장난과 나를 부르는 소리
급한 식사를 재촉했다.
이제 퇴임한 친구들과 점심 약속으로
조잘대는 소리 없이
오롯이 음식과 대화에 집중하는 시간
대낮 레스토랑의 여유로움은
삶의 맛까지 느낄 수 있는 과분한 힐링이다.
퇴직이 준 이 여유. 좋다.
바쁘지 않아도 뛰는 것이 습관이었던 시절
봄이 와도, 꽃이 피어도, 새순이 돋아도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아니 머릿속이 일로 꽉 차 있어
제아무리 좋은 풍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제 가뿐해진 몸과 마음은
새소리, 바람 소리, 꽃들의 흐드러진
웃음소리까지
산책에 진심을 담는다.
퇴직이 준 여유. 좋다, 참 좋다.
아파트 안에 있는 북카페를 지나다니며
한가로이 차를 마시는 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
언젠가는 나도 가봐야지 하다가
입주한 지 10년이 넘은 오늘
드디어 들어가 차 한잔.
퇴직이 준 여유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느긋함
남들에겐 별거 아니겠지만 좋다. 참 좋다.
눈팅만 하던 일들이
이젠 내 것이 되었다.
힘듦을 견뎌냈기에 더 소중한 지금 이 시간
감사하고 소중한 하루하루
이제부터의 인생은 여유롭고 행복하게~
-사진출처 법륜스님 희망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