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원 일기' 전시회
“어머! 복수초다 복수초!” 미술관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정원 구경을 나섰다가 소릴 질렀다. 올해 만난 첫 꽃이라 반가움이 컸다. 복수초는 휑한 앞마당에서 두 무더기로 모여 앉아 환하게 우리를 반겼다.
따뜻한 햇살을 등에 업고 세상 구경에 신난 아이들처럼 쨍한 노랑으로 화단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새봄이 왔다고 땅속을 헤집고 먼저 달려 나온 성질 급한 복수초는 카메라 세례를 받기에 충분했다.
미술관 뒷동산 전망대에 올라가니 산수유도 팝콘 터지듯 꽃망울을 쏟아내고 있었다. 서울에도 봄이 성큼 와 있었다.
종로 구립 박노수미술관은 개관 11주년 기념으로 ‘간원 일기’를 주제로 전시 중이었다. ‘간원’은 부암동 소재 화실의 당호로 그 당시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 주제는 크게 세 부분으로 1900년대 산수화 작품, ‘간원’과 ‘박노수 가옥’에 대한 소개, 수석을 활용한 미디어 작품 ‘산천 승경’이었다.
산수화의 매력은 단연 여백의 미다. 산과 나무와 바위에 입혀진 부드러운 원색은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강 江>이란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형태를 간략하게 표현한 여백의 공간에서 잠시 쉼을 얻었고 수묵과 어우러진 색조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그림을 보는 동안 피곤이 잠시 멈추었다.
박노수 화백이 40여 년간 머물렀던 붉은 벽돌 2층 집은 온돌과 마루, 벽난로가 있고 창이 그림처럼 사계절의 바깥 풍경을 잘 담아내었다. 예술가로서의 서정이 자라고 꽃 피우기 좋은 아늑한 집이다.
서까래가 노출된 비스듬한 천장과 햇살이 깊게 스며드는 창문을 가진 2층 다락방은 탐나는 공간이었다. 글을 써도, 그림을 그려도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이런 비밀 장소를 나도 하나쯤 갖고 싶었다. 윤기 나는 짙은 갈색의 마루, 살짝 삐걱거리는 계단, 오래된 TV가 영상 작품을 만들어 주고 있는 화장실에도 세월이 묻어났다.
세 번째 주제 <산천 승경>은 수석을 좋아하던 그가 수집한 수석을 박유석 작가가 미디어로 재해석하였다. 어두운 방에 들어가니 산세가 돋보이는 자연석이 가운데 놓여있었다. 오묘한 불빛이 마치 염색하는 것처럼 번졌다 사라져 마치 계절 따라 변하는 산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승경’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멋진 경치를 생동감 있게 만들어 한참을 앉아서 홀린 듯 바라보았다.
한국화의 거장 박노수 화백은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 600인에 선정될 만큼 베푸는 삶을 살았다. 사후 정성 들여 가꾼 가옥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는 갔지만 그의 천여 점의 소장품과 고풍스러운 집은 멋진 미술관이 되었다.
오늘도 그림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속세의 시름을 잊고 잠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위안을 얻도록 해 주었다. 복수초와 그림으로 시작한 새봄, 새 마음도 피어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