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어싱' 하기 좋은 미케비치 해변
나와 같은 날 퇴임하기로 되어있던 친구가 퇴임을 몇 달 앞두고 몸이 안 좋아 큰 수술을 하였다. 그는 수술 후 요양차 베트남 다낭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고 했다. 40년 넘게 힘들게 직장생활을 했기에 퇴임 후에는 즐겁게 놀 생각으로 꿈이 컸을 것이다.
반갑지 않은 퇴직선물을 받은 내 친구는 그래도 씩씩하게 그 힘든 치료를 다 이겨내고서 혼자서 다낭으로 떠났다.
얼마 후 그녀가 걱정스러웠던 나는 전화를 했다. 그녀는 미케비치 해변에서 아침, 저녁으로 걷다 보니 건강이 많이 좋아져 네 달 더 있기로 했다며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완전히 회복되어 집에 올 모양이다. 건강해지려면 우리 몸이 땅의 에너지와 접지를 해야 하는데 촉촉하고 소금기가 있어야 효과가 좋아 바닷가에서 걷기를 한다고 했다.
친구가 다낭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물가가 저렴하고, 차가 없어도 그랩을 불러서 어디든지 다닐 수 있고, 어싱이 가능한 긴 해변이 있고, 치안이 좋고, 열대과일과 채소가 싸고 맛있어서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제주도에서도 한 달 살기를 해 봤는데 물가도 비싸고, 해변 길이가 짧아 어싱하기 좋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가 말하는 어싱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어싱(earthing)이란 땅(earth)과 현재진행형(ing)의 합성어로 ‘땅에 발을 딛고 걷고 있는 행위’를 말한다. 어싱의 효과는 혈액 표면에 있는 세포 사이의 밀어내는 힘이 높아져 혈류가 잘 흐르도록 해주어 맨발로 40분 정도 걸으면 끈적끈적한 혈액의 점성이 개선된다고 한다.
맨발 걷기를 강조하는 사람들도 현대인은 부도체인 신발을 신고, 아스팔트를 걷고, 고층 아파트에 살기를 좋아해서 24시간 땅과 접지를 못한 채 살아가고 있어서 모든 질병이 생기게 된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또 한 사람은 허준이다.
“약을 써서 몸을 보호하는 약보(藥補) 보다 좋은 음식으로 원기를 보충하는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는 걷는 행보(行補)가 낫다.”
‘맞아, 맞아!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이 건강하지. 맨발 걷기, 어싱에 관심이 확 생기는 걸.’
친구가 오랜 시간 먼 타지에서 혼자 보내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나도 그동안 오랜 직장생활로 지친 몸을 회복하고 싶었다. 같이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해서 다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다낭 미케비치는 친구의 말처럼 백사장 끝이 안 보였다. 총길이가 30km 정도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해변이라고 한다. 북쪽 영흥사가 있는 먼 타이 해변에서 중앙으로 오면 미케비치 해변, 하미비치 해변, 남쪽의 호이안에 있는 안방비치 해변으로 이어진다.
미케비치는 미국 경제잡지인 포브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한 6대 해변 중 하나로 손꼽을 정도로 너무 아름다워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미군들의 휴양지가 있던 곳이다. 몇 년 전에 가족여행으로 왔을 때보다도 높은 고층의 호텔들이 즐비해져 밤이면 더욱 화려해진 불빛을 해변으로 쏟아냈다.
나와 친구는 아침저녁으로 길고 긴 미케비치 해변에서 ‘슈퍼 어싱(Super Earthing)’을 했다. 바닷물이 발목에 잠길 정도의 높이로 걸어야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바닷물이 들락날락하는 해변을 첨벙첨벙 걸었다.
"음전하야~ 내 발바닥으로 들어와 정수리까지 도달하면서 몸속의 염증들을 모두 추출해 다시 발바닥을 통해 쏟아 내보내렴." 끈적해진 혈액의 점성이 맑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해 뜨는 아침 미케비치는 고요하고 평화롭다. 살포시 떠오르는 은은한 햇살은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을 엄마 품처럼 품어 안는다. 잔잔한 파도를 바라보면 시간의 굴레에서 쳇바퀴 돌며 아등바등 대던 시간이 아득히 멀어졌다. 사람들과의 치열했던 일터에서의 아픈 기억도 산산이 조각나 썰물을 타고 사라졌다.
해변의 긴 모래사장에는 요가하는 사람, 앉아서 바다멍 하는 사람, 달리기를 하는 사람, 걷는 사람 등 건강한 기운으로 활기차다.
슈퍼 어싱 후에는 시장에서 사 온 풍성한 열대과일로 아침 식탁을 가득 채운다. 혼자 낯선 곳에서 외로이 견디다가 함께 나누는 웃음꽃 대화는 더없이 좋은 영양제가 될 것이다.
“친구야, 그동안 고생했어. 우리 은퇴해서 이제부터는 꽃길이야. 빨리 나아서 같이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