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첫 단추를 꿰며,
사람들의 열정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나의 열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단순히 성경에서 하나님께 하듯 열심히 모든 분야에서 하라고 명하셨기에 순종하는 걸까? 아니면 내 기질적인 부분이 있을까?
오전에 A라는 친구와 통화를 했어. 우리 모두 그렇듯, 각자 다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는 시간들이 있잖아. A 에겐 오늘 오전이 그랬어. 짧은 내 최근 일상 공유로 시작된 통화는 본질적인 삶의 의미부터 현재 A가 하는 고민을 같이 생각하는 시간이었어.
“와 너랑 이야기하고 나니 내 고민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가는 듯한 느낌이야, 고마워”
”아까 네가 이야기한 부분, 뭔가 가슴에 울림이 남는다.”
“넌 참 대단해. 미국 사람들이 다 그래? 아니면 네가 그런 거야?”
— 등의 말 또한 들었던 시간이었지.
글쎄, 내가 그렇게 대단한가. 큰 울림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고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어. 하지만 오늘 통화를 포함에 최근에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이런 말을 자주 들어. 특히 내가 존경하는 스타트업 대표님께서도 비슷한 류의 말씀을 해주셨어 (저녁식사 분위기상 큰 의미 없이 하신 말씀이실지도 모르겠지만).
알쏭달쏭하면서도 한 가지 확신하는 건 평범한 삶 속에는 사실 비범함이 내재되어 있다는 거지. 평범함과 비범함은 사실 종이 한 끗 차이야. Interchangeable! 사고의 흐름을 살짝만 바꿔도 평범한 게 비범해지거든. 이런 걸 생각하면 다소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삶이 남들에게는 비범하게 비치는 걸까? 싶기도 해.
늘 그래왔지만 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인생의 목표라고 하기엔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지만, 이 짧은 세상 사는 동안 나로 인해 내 주변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되고 싶어’, ‘~하면 좋겠어’를 벗어나 2024년은 ‘~되었어’ ‘~했어’ 가 비중을 더 차지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오늘 오전에 B라는 분은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이냐고 여쭤봤어. 뜬금없는 질문이라고 운을 떼시면서 물어보셨는데, 난 이런 류의 질문들을 좋아해. 해서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고 싶었어. 그 전날 재밌게 논 덕에 문자 확인하고 눈 뜬지 얼마 안 됐지만, 이불 푹 뒤집어쓴 상태서 꼼지락 타이핑하고 정리해 답 드렸더니 -
감사했어 - 나를 좋게 봐주셔서! 짚고 넘어가지 않았으면 스스로 크게 pay attention하지 않았을, 나라는 사람의 한 부분을 장점으로 승화시켜주셔서! 난 나의 어떤 모습에도 ‘살다보니 이렇게 된거지 뭐’ 하면서 단순화해버리는 성향이 있거든. 이 성향이 좋은건지 안좋은건진 아직 잘 모르겠다.
내 주변에 친구 A와 B님 외에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며 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 난 다른 사람의 장점이나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 거다’를 캐치하는 눈썰미가 부족해. 살짝 마이웨이인 부분도 한몫하는 것 같아.
해서 더욱 내 주변에 그런 분들이 생기는 현상은 정말 좋은 것 같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있는 느낌이랄까? 나도 그분들의 장점 캐치하고 싶고 알려드리고 싶고, 그래. 같이 보내는 시간과 섞는 말, 심지어 실 없는 농담까지도 하나 놓치고 싶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 삶이 꽤나 재밌어지고 있어! 늘 행복하진 않겠지만, 살다 보면 우여곡절 찾아오겠지만, 잘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아.
기대가 돼, 2024년도 :)
P.S. 이 글은 2024년 1월 3일에 집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