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독서를 했다.
'다시 한눈을 팔 수 있게 되었을 때 내 열쇠가 바로 길가 내 눈높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글과 유사한 경험이 아지랑이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아파트 곳곳의 구조물에 올려진 짝 잃은 신발과 실내화, 내 손바닥보다 작은 아기 양말. 러닝 후 커피 한 잔 사려고 들렸던 카페 근처에 떨어진 내 손수건은 바로 앞 도로, 볼라드 위에 살포시 올려져 있었다.
아파트 담벼락 사이 떨어져 있던, 막 떨어진듯한 깨끗한 동전 지갑을 본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대로 두면 더러워질 텐데.' 고민 끝에 곧 찾아올 주인을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담벼락 기둥을 떠올렸다. 작은 동전 지갑이 자리 잡은 낮은 담벼락은 키가 작은 주인이더라도 대충 잘 보이겠거니 싶었다.
이 외에도 꽤 많은 경험이 떠올랐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친절이 많았구나.' 의식하지 못했던 귀한 경험들이 새삼 즐겁다. 시끄러운 도로와 회색빛 건물 사이를 혼자 거니는 줄 알았는데, 나의 세상은 친절한 사람들과 공유되고 있었다.
'올겨울도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올겨울의 희망도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귀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바람 소리가 숭숭 새고 말소리가 울린 적이 있다. 이관개방증이었다. 원인을 딱 맞출 순 없으나 비염과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였고, 둘 다 해당했으니 충분히 걸릴만한 질병이었다.
구멍이 점점 커지기라도 했는지(물론 아니다), 어떤 조언이나 위로도 머리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숭숭 빠져나가던 때가 있었다. 우울이 절정으로 치솟았던, 주변의 걱정을 빙빙 꼬아 들을 힘도 없던 때였다.
우울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생각과 기억을 계속 갉아먹는데, 대화를 잊는 수준을 넘어서서 바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한다. 차키를 두고 가거나 잃어버리는 건 다반사이고, 용량이 500ml도 되지 않는 작은 컵에 1L 물을 부어(정수기 버튼이 그렇다) 다 흘린 물을 울면서 닦았다. 데우다가 잊어버린, 졸아든 국물이 왜 이렇게 밉고 힘든지 툭하면 눈물을 쏟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울고 울다 '왜 살고 있나?' 답을 찾지 못해 불안해서 또 울던 어느 날, 가만히 누워서 sns만 무한으로 내려보던 흔한 날이었다. 우울증 걸린 가족을 위하여 다음 계절의 제철 과일을 이야기했다는 일화를 접했다. 제철 과일. 정신을 차리고 커튼을 걷어 하늘을 봤다. 내가 '제철 하늘'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오래간만에 여행 날짜별로 정리된 사진첩을 열어 사진 속 풍경과 하늘을 잔뜩 구경했다. 좋았다. 너무 좋아서 당황스러웠고, 일단 이렇게 살아가면 되겠다며 안심했다.
우리 집은 남동, 남서로 창이 나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모두 볼 수 있는데, 특히 일몰을 담는 남서향의 작은 방 풍경을 좋아한다. 이사를 온 지 두 계절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창을 찍은 날만 스무날이 넘었다. 봄에는 옅은 분홍색과 살구색 하늘을, 여름엔 타오를 것 같은 짙은 주황색 하늘과 새카만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찍어두었다. 이렇게나 좋아하던 하늘을 코 앞에 두고 앵무새만도 못하게 '왜 살고 있나? 뭐가 행복인가?' 반복한 것이다. 나의 희망은 하늘에 걸려 있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와요.'
봄이 나랑 무슨 상관이냐며 무시하던 문장이 다시 보인다.
'봄에, 아직은 구름이 적은 연한 빛의 하늘이 다시 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