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대는 밤

양 한 마리에 심장 박동 5번

by 현재

24년 1월, 첫 진료가 기억난다.

'제가 공황을 겪은 것 같아요.' 조용한 정신건강의학과에의 첫 방문, 그리고 의사 선생님과의 첫 대화였다.


'잠은 잘 주무세요?'

질문에 대한 첫 대답은 '아마 잠은 잘 잘 거예요.'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더 자세한 질문이 오고 갔다. 자는 시간과 잠드는 데에 쓰이는 시간, 꿈의 빈도와 중간에 깨어나는 빈도 등. 자세한 진료를 마친 후 나는 급성 스트레스 및 불면증 환자가 되어 있었다. 전공 지식을 내 진료 중에 들을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그러니 그냥 평범한 직장인의 흔한 밤잠 뒤척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불면증일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왜 이렇게 웃기는지.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꿈은 3개 이상, 11시에 누워도 새벽 2~3시에 겨우 잠드는 것이 기본이었으며 그마저도 4시부터는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깼다. 6시 되어서야 몰아치는 졸음과 싸워 6시 30분 기상, 꾸역꾸역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천만다행인 점은 1월에 방학이 시작한다는 것이었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가장 작은 용량의 이름 모를 알약은 적어도 푹잠을 자는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다시 재발했지 뭐, 모든 질병이 그러하듯. 한번 무너진 정신을 대충 쌓아 여기저기 옮겨대니 와르르 쏟아지는 건 예정된 일이었다. 왜 하필 지금인가, 원망하고 후회스러운 봄과 여름을 지나 독기만 남은 가을, 겨울을 마치고 25년을 맞이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외상 후 스트레스 및 우울증 환자로 진단명이 변경되어 있었다. 불면증은 당연한 덤으로 취급되었다.


25년의 시간을 샀다. 유독 벚꽃이 가득했던 봄, 휴직을 시작했고 첫 몇 달간은 약 용량을 계속 올렸다. 휴직 자체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데 이놈의 병은 낫지를 않으니 불안과 좌절, 무력함이 최고에 달했고 불면증과 우울증은 눈가의 점처럼 원래 있던 것 마냥 깊이 박혀 일상 모든 곳에 있었다.


지금 떠올려봐도 참 갑갑했겠다 싶은 상황이다. 다행히 뜨거운 여름 해가 불안까지 태우기 시작했다. 정말 갑자기. 당시에는 러닝을 시작하는 등 특별한 도전 덕분인가 생각했지만, 불안과 우울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새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작 한 달 뛰고 다쳐서 못 뛴 게 웃음 포인트) 휴직으로 인해 일상의 루틴이 너무 망가지면 더 우울할까 봐 평생교육원 미술심리반을 등록했는데, 복직 후 도움도 되겠지 싶었던 이 공부가 조용히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약은 점점 줄어 다시 가장 작은 용량까지 내려왔다.(사실 잘 모른다. 의사 선생님이 한 말씀일 뿐) 매일, 종일 우울 롤러코스터를 타던 기분이 뭐였는지 잠시 잊고 살았다. 그리고 복직을 앞둔 지금, '나야, 불면증.'


화딱지가 난다. 뭐야, 이 쳇바퀴는.(짜증 내는 걸 보니 아직 에너지는 살아 있나 보다.) 오래간만에 불안으로 두근거리는, 귀를 기울이면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심장 박동을 느끼며 새벽 4시까지 양이나 세 보았다. 혹시 나도 모르게 잠깐 잤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아주 생생한 정신으로 박동 수까지 세며 어이없어하고 있었기 때문.


'복직에 대한 불안이 클 테니, 일단 복직하고 보죠. 복직 날 진료일 잡을게요.'

-깔끔해서 믿음이 가는 의사 선생님


1월부터 시작된 이 바보 짓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유사한 증상을 함께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전해주고 싶다. 또 시작이라고 불안해하지 말고(최대한) 기다려보자고. 불안과 우울 모두 뜨겁게 타올라 사라졌던 그런 날이 또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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