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요청

심해에서

by 현재

'병이 다 나았다.'

치료나 먹고 있던 약을 마무리지었을 때 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라고 생각해서 조금 급하게 끊었다. 주변에서 봐도 나쁘지 않은 상태, 혼자 그럭저럭 버텨낼 만한 상태. 결혼 5년 차에 아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복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없었던 조급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약 기운을 세게 받는 체질인지, 버틸만한 체력이나 정신력이 부족해서인지 약 효과가 진하게 나타나는 타입이라 한참 약을 시작하고 출근할 때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더 급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진료를 받으며 멀쩡한, 즐거운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음을 어필했고 조금 남아있던 우울증 약만 멈췄다. 약을 끊은 첫 달에서 두 달째로 넘어가는 사이, 난 정말 괜찮았다. 밝았고 다양한 활동에 즐겁게 참여했으며 책도 많이 읽었다. 안심했다.


차츰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할 게 많은데, 아니 진짜 많은 게 맞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생각을 머리에 가득 채워두고 누워있다가 '망했다. 시간 또 다 버리고 있네.'.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 다시 눕는다. 누워서 생각한다. '나 왜 누워있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머릿속에서 복잡한 회의를 마친 것 같은 피로가 몰려든다. 제발 생각을 했으니 실행을 하자며 앉아 또 생각을 하다가 다시 눕는다.


누워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나 연락처를 뒤적인다. '내가 지금 일어나 지지가 않아. 어떡하지. 할 게 많거든.' 그리고 나에게 내가, 언제까지 남에게 기대기만 할 것인지 또 질타한다. '다 바빠. 스스로 해결해. 그냥 일어나.' 꾸역꾸역 일어나 이것도 일기로 남기겠다며, 카페인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며 차를 타고 나섰다. 이 바보 같은 짓이 오늘은 다행히 4시간 정도로 그쳤다. 그 결과 놀랍게도 노트북을 열어 브런치를 켜고 이러고 있다.


남색 소파가 문제인 걸까? 심해같이 무겁고 짙은 물속에서 나오는 게 점점 버거워진다. 곧 복직인데, 내 할 일은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책임을 중단하기 싫은데. 그렇게 되면 또 죄책감에 못 이길 테니까 날 위해서라도 한 사람의 몫을 해야만 하는데 왜 다시 가라앉고 있는가. 지긋지긋한 우울증이 자길 잊지 말라고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거품을 만들어 내 세상을 다 덮어버리는 것 같다. 아, 의사 선생님한테 또 뭐라 말해야 하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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