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리는 것 없는 하루

감기 덕분에

by 현재

감기에 걸렸다.

날씨는 따뜻하니 덥지도 않았고, 바람은 시원해서 춥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갑자기 찾아온 이 목구멍 염증과 콧물의 이유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귀찮게 감기까지 걸리고. 참 시끄러운 몸이다.'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장점이 있었으니, 잠이 쏟아지는 감기약은 오래간만의 꿈도 없는 숙면을 가져왔다.

감기약과 비염약만 있으면 불면증 약은 줄여도 되겠다며 환자만 재미 삼아 말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말을 꺼내며 남편의 출근을 지켜보다 다시 또 잠들기를 반복했다.

장난으로 한 말이 씨가 되어 이 날은 정말 잠만 늘어지게 잔 하루였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보낸 불안한 하루가 아니라, '오늘은 일정 다 취소하고 마냥 자야지.'라고 선택한 즐거운 잠이었다.

긴 휴직이 끝난 이후에도 잊어서는 안 될, 불안하지 않은 텅 빈 하루.

생각보다 귀중한 감정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고 기록으로 남긴다.


다음 날, 감기 외에 모든 컨디션이 좋아졌다.

목은 쉬고 코는 막혀 목소리는 상당히 웃겼지만 마음은 맑아졌다.

이유도 없이 신이 나서 쉰 목으로 봄노래를 불러대며 냉장고를 열었고, 집히는 대로 대충 때려 넣은 그릭요거트는 정말 맛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퍽 웃기기도 했고.

평소에는 감정이 유독 짙은 파랑으로 물드는 저녁엔 집으로 돌아와 담요를 둘러매야 했음에도 오늘은 특별히 저녁 약속을 잡고 약속 장소까지 40분을 넘게 걸었다.

감기 기운으로 휘적휘적 걷는 몸은 너무 무겁고 힘이 드는데 그냥 걷고 싶었다.

무식하게 걷고 만난 친구와 오늘이 지나면 잊힐 가벼운 일상 대화를 맘껏 나누고, 또 걸어 사람도 많고 소음도 많은 대학 축제에 갔다.

피하기만 했던 시끄러운 장소는 밝은 감정들이 생생하게 폭발하는 곳이었고, 귀를 때리는 드럼 소리는 막힌 심장까지 때려댔다.

생각 없이 무대만 바라보며 무거운 몸으로 방방 뛰어댔다.

'거슬리는 것 하나 없는 이런 하루를 즐겨본 게 언제였지?' 과거를 되짚어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멈췄다.

오늘만 생각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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