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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샘 Dec 19. 2017

짧은 사진

12월, 물향기수목원



늘 그랬던 것처럼 겨울이 왔다.

빈 가지로 시작해 여러 모습을 보여준 나무는 다시 한 해가 시작할 때처럼 초록빛이 거의 사라졌다. 잎이 떨어지고 열매껍질만 남은 빈 가지 사이로 마른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구름 같은 꽃이 피던 나무는 피어났던 모습 그대로 말라붙어 있었다. 꽃이 모두 사라진 계절이지만, 바깥에도 이런 꽃들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잎들은 나무에 붙은 채로 말라붙었다. 화려함이 빠진 단풍빛이 이제 올해도 끝났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많은 순간들이 내 눈과 렌즈 앞을 지나쳤고, 이런 말라버린 것들이 예전에 다녀왔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 온실은 들어가자마자 렌즈에 습기가 맺혀 한동안 기다렸다 찍어야 한다. 습기가 빠지길 기다리는 동안 겨울빛이 내리쬐는 온실을 둘러보았다. 추운 날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팬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온실에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내 짧은 사진처럼 시간도 빠르게 지나갔고, 올해와 올해 사진은 과거로 남았다. 






올해는 유독 사람들이 내게 왜 풀과 꽃을 찍는지를 물어보는 일이 많았다. 무언가를 만드는 취미를 갖고 싶어서 사진을 택했고, 잡다한 것을 찍다가 좋아하는 소재에 집중하고, 집중하는 일에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한 해 두 해 사진이 쌓여가는 동안, 저장된 사진을 둘러보니 계절이 바뀌고 여러 가지 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이 담겼고, 그 안에서도 내 사진이 변해가는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화려했던 올해처럼, 내년에도 올해보다 화려한 사진들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풀과 꽃을 계속 담는 동안, 지금까지 담아온 것들보다 더 화려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담을 수 있기를. 





w_ A7R2, Loxia 2/50




LumaFonto Fotografio

빛나는 샘, 빛샘의 정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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