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라 부를만한 곳, loxia 2/35와 함께
친한 동생이 예전에 자기 학교 미국인 교수님을 서울숲에 데려가면서, '여기가 Seoul Forest'라고 말했단다. 그 교수님은 '이건 Park지 Forest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고. 알고 보니 그 교수님 본가는 진짜 숲 속에 있다고 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아 미국인들은 나무 사이에서 곰 정도는 나와줘야 숲으로 쳐주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연물을 주로 찍지만, 완전 야생으로 들어가는 건 또 싫어하는 편이다. 우리나라도 산이나 숲은 많겠지만, 완전 야생은 체력적으로도 담력적으로도 감당이 잘 안된다. 밤에 별사진 찍으면서도 전기 파리채 들고 벌벌 떠는 겁 많은 한낱 인간일 뿐이라...
그래서 근처 공원이나 수목원을 도는 것을 좋아한다. 바빠서 잘 가지 못했지만, 요즘 점점 예전의 열정을 다시 찾다 보니 사진을 찍으러 나가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래서 이날은 국립수목원에 갔다.
예전에는 광릉수목원이라 불렸던 그 곳 맞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름이 국립수목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택시기사님들은 광릉수목원으로 말해야 알아들으신다.
여기는 하루에 고정된 인원만 들어갈 수 있는데, 예약페이지에 가서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헬이라 괜히 가서 허탕 치지 말고 반드시 예약하자.
예약을 하기 위해 들어간 날짜 기준으로 4주+1일 정도 범위까지 예약을 할 수 있다. 주말에 예약하려면 목요일이나 금요일에는 가서 봐야 한다.
대충 5월 초중순인가 즈음에 예약을 했다. 그리고 그 전에 35mm 화각에 대한 내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필드테스트를 하고, 이거다 싶어서 새 렌즈를 들고 여기로 출발.
ㄱㄱ
내가 왔을 때까지만 해도 비가 오락가락했다. 이게 대체 언제 그치나 했는데 결국 그침.
하늘을 올려다 보니 비는 그쳤다. 우비 입고 레인커버 끼고 쑈를 했는데 얼마 안 가서 그쳤다.
아...
나무 밑에서 나뭇가지를 위로 바라보거나, 공간을 바라보는 구도의 사진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지만, SNS에 올렸을 때 꽤 반응이 좋은 편이다.
뭔가 미국의 숲 스러운 느낌이 전해져 온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엄청나게 큰 나무들이 보인다. 35mm 화각으로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을 때까지 물러나도 나무를 한 곳에 담기가 힘들다. 광각이 이럴 땐 아쉽다. 이건 그래도 뒤에 공간이 많아서 35mm로 나무 한 그루를 다 담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을 좋아한다. 풍경 같이 광활해 보이지만 세부적인 디테일은 굳이 확대하지 않더라도 느껴지는 사진을.
길을 걷다 보면 아까와 같은 엄청난 포스를 뿜어내는 나무들도 있고,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의 숲이 있다. 지도로 봐도 확실히 넓은데, 이런 숲이 들어 있으니 훨씬 더 넓어 보인다. 보통 수목원 하면 정원 정도를 생각하게 되는데, 근래에 가본 수목원 중에서는 가장 숲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제 아무리 35mm에 2.0 렌즈라도, 피사체에 가까이 가져가고, 배경에 적당한 나무가 있다면 몽글몽글한 보케천국을 볼 수 있다. 그게 아닌 배경이라면, 마치 주밍샷과 같은 느낌을 내줄 때도 있고.
나무만큼이나 꽃도 많은 곳이지만, 꽃은 입구 근처 낮은 곳에 주로 몰려있다. 그리고 봄 꽃은 다 지고 여름 꽃들이 필 시기인데, 타이밍이 그닥이라 봄 꽃은 다들 지고 여름 꽃은 아직 덜 핀 상태였다.
그리고 항상 꽃 근처엔 벌이 많고, 숲 근처엔 모기가 많다. 항상 정원이나 수목원이나 숲 사진을 찍으러 갈 때는 꼭 모기기피제를 챙기자.
여긴 여름엔 6시까지, 겨울엔 5시... 까지 연다. 넓이는 엄청나게 넓은데 문은 일찍 닫으니 그냥 속편하게 도시락 싸서 오거나, 의정부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달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로 가려거든, 의정부 터미널에서 수목원 가는 버스 배차간격이 근 20분이라 놓치면 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