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 아래 불경 외는 소리가 울려 퍼지던 강과 바다
최근에 나는 일본 교토와 오사카, 오카야마 일대의 정원을 보러 갔다 왔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컨셉으로 여행을 다녀온 글들을 보고는, 마침 주로 찍는 소재들이어서 나도 한 번 정원여행 컨셉으로 일본에 가보기로 했다.
겨울에 가는 여행인지라 우리나라 겨울을 상상하고 걱정했다. 다행히도 일본의 12월 기온은 우리나라 10월 말~11월 초 사이였다. 심지어 아직 단풍이 남아있다.
이날은 교토 치온인(지은원, 知恩院)에 갔다.
내가 갔을 때는 흐린 날이었고, 장비는 A7R2와 loxia 2/35를 챙겼다.
치온인은 부분유료화 되어 있었다. 치온인 경내 자체는 무료였고, 유우젠엔(우선원, 友禅苑)과 호조테이엔(방장정원, 方丈庭園)이 유료였다. 두 정원을 모두 볼 수 있는 입장권은 500엔.
유우젠엔이 매표소 바로 앞에 있어서 유우젠엔부터 갔다.
무료 구역에는 일본인과 외국인이 섞여 있었고, 유료 구역에는 대부분 일본인들이 있었다.
뒤에 갔던 호조테이엔과 달리 유우젠엔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원 입구는 호수가 있었다. 계단으로 갈 수 있는 누각은 들어갈 수 없었다.
정원 한가운데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에는 물에 잠기지 않은 바위와, 떨어진 나뭇잎들이 있었다.
물가에는 이끼들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한참 동안 말없이 서서 조용히 흘러가는 강을 보았다.
마치 물소리가 들리는 듯, 근처에서는 새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모래로 된 강 위쪽으로는, 매우 작은 폭포와 숲이 있었다.
숲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 마치 정원을 벽으로 둘러싸듯 이어져 내려갔다.
호조테이엔은 법당 깊숙한 곳에 있었다. 중간에 건물을 통과해야 했다.
정원 주변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모래가 마치 파도가 치는 것처럼 다듬어져 있었다. 쪼그려 앉아서 이 광경을 보았다.
마침 수행 시간이었는지 불경 외는 소리가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경건하고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해안선 너머로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거리에서 그렇게 자주 들리던 까마귀 울음소리는, 이 곳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주변의 소리와 풍경에 마음이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호수를 지나 정원 끝에는 산맥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유우젠엔과 마찬가지로, 정원 주변은 높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사진을 다 찍은 뒤에도 나가지 않고 한참을 있었다.
겨울 호조테이엔은 4시 15분께면 문을 닫는 듯하다.
문을 닫기 직전에야 호조테이엔을 빠져나와서, 치온인 나머지 구역들을 둘러보고 나왔다.
치온인 중앙 법당 건물은 한창 보수공사 중이었다.
겨울 5시는 마치 여름날 8시 느낌과 비슷했다.
간사이공항 입국 수속의 악명 높은 대기시간에 대해 얘기를 많이 듣고 가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30분 만에 끝나서 이날 치온인에 올 수 있었다.
일정 상 여기를 못 갈 뻔했는데, 그랬다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아침 비행기를 타느라 잠을 못 자고 간 첫날이라 피곤했지만, 여길 오니 피곤함 따윈 잊고 셔터스피드가 안 나올 때까지 사진을 찍고 둘러보았다.
해외여행 첫날의 신선함을 감안하더라도, 이 곳은 교토에서 둘러본 정원들 중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곳 중 하나다. 언젠가 다시 교토를 가게 된다면 꼭 다시 여길 와 보고 싶다.
LumaFonto Fotografio
빛,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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