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보는 호조테이엔, 압축되어 있는 난젠인
철학의 길을 끝까지 걸었더니 시간이 살짝 촉박해지려던 참이었다. 일본도 겨울에는 해가 빨리 져서, 4:30 이후로는 빛은 없어지고 사실상 저녁이라고 봐야 할 수준이더라. 철학의 길 아래쪽 끝에서 난젠지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조금 서둘러 걸은 덕분에 사진 찍을 시간은 벌 수 있었다.
난젠지를 정문으로 들어간 건 아니고 샛길로 들어간 덕에 절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다. 삼문이 보이지 않았다면 아닌 줄 알고 지나칠 뻔했다. 해가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었다. 차라리 엄청 덥더라도 여름에 왔더라면, 빛이 좋은 순간을 더 오래 붙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난젠지는 부분유료화 되어 있었다. 삼문과 방장정원, 난젠인은 유료 구역이다. 삼문은 건너뛰고 호조테이엔과 난젠인 두 곳 보는 데 800엔이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치온인처럼 패키지 할인 따위는 없는듯.
여기도 A7R2에 loxia 2/35를 끼우고 갔다.
방장정원 입구에는 모래로 된 연못과, 이끼와 나무와 바위로 된 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치온인의 방장정원보다 더 인공적이고 그림 같은 느낌이 강했다. 마치 미술관에서 전시구역 중간에 있는 대형 작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 곳의 정원은 미술관 느낌이 났다. 주로 불교와 관련된 작품/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당연하지만 작품들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문득 열린 창문에 정원과 숲이 펼쳐진 것이 인상 깊었다.
이제 정원은 슬슬 저녁의 그늘빛을 띠고 있었다.
이 곳의 정원은 건물을 끼고돌며 감상하게끔 되어 있었고, 나무 바닥을 벗어난 밖은 보통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영역이었다. 대부분의 요소들은 낮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나 숲을 빼면, 사람 허리보다 높은 것을 찾기가 힘들었다. 다들 슬리퍼를 끌고 걷다 서다 하며 보는데, 이렇게 보니 뭔가 아니다 싶어 앉아봤다.
비록 정원 통로는 사람이 잘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진 않았지만, 앉으니까 서 있을 때보다 더 멋지고 여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여길 설계한 사람도 여긴 앉아서 보라는 의미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들 다 걸어 다니는데 혼자 앉아 있는 게 조금 이상하게 보였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면 더 예쁜걸.
그렇게 잠깐씩 앉아서 나머지 구역도 둘러본 뒤, 난젠인으로 향했다.
중간에 길이 살짝 헷갈렸지만 어쨌든 입장권 파는 곳을 찾아서 들어갔다. 4:30이면 문을 닫는 곳이라 그런지, 밖이든 안이든 사람이 많이 없었다. 내가 난젠인 안에 들어갔을 때는 외국인 한 명과 나 말고는 정원 안에 아무도 없었다.
난젠인은 내 예상과는 달리 엄청나게 좁았다. 조금 큰 건물 하나와 작은 호수, 그리고 호수 위에 놓인 작은 섬과 그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나무들이 전부였다. 정말 그냥 눈으로만 훑고 나온다면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의 좁은 정원이었는데. 마치 거대한 공간이 압축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은 호수를 따라 천천히 돌았다. 호수 반대편은 마치 숲같이 빼곡한 느낌이 들었다. 앞에서 보는 분위기는 여유로운 풍경과 평온함이 느껴졌다면, 뒤쪽에서는 신비함이 느껴졌다.
12월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워낙 따뜻한 남쪽나라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모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원 주변은 다른 정원보다 훨씬 높은 나무들이 벽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여기가 광활한 숲 속의 일부인 것 같았다. 그렇게 좁은 정원이 한 바퀴를 돌고 나니 그렇게 넓어 보이더라.
겨울인데 초록빛이 살아 있는데다, 이미 잎이 다 떨어진 빈 나뭇가지들과 낙엽과 이끼가 어우러져 묘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사계절이 한 데 모여 뒤섞인 느낌이 들었다.
LumaFonto Fotografio
빛,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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