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함께 차분히 가라앉은 풍경
어느 날, 일본 3대 정원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고라쿠엔(後樂園), 가이라쿠엔(偕樂園), 겐로쿠엔(兼六園) 요렇게 세 곳이라고. 고라쿠엔은 오카야마에, 가이라쿠엔은 후쿠시마 아래 미토에, 겐로쿠엔은 북쪽 바다 가나자와에 있었다. 겐로쿠엔은 거기만 보면 그다음 뭘 봐야 할지 모르겠고, 가이라쿠엔은 내가 도쿄를 가지 않는데다 하필 후쿠시마(...) 근처고, 그나마 고라쿠엔이 가볼 수 있는 정도 거리에 있었다.
대체 여길 어떻게 갈까 하다가, JR간사이 와이드 에어리어 패스라는 것이 있더라. 미리 예약해서 가면 8,500엔인데, 오카야마 왕복만 해도 1만 엔이 넘어가서 본전은 찾을 수 있었다. 마침 간사이공항에서 교토로, 교토에서 오사카로 갈 방법을 찾고 있었고, 오사카는 교토처럼 정원이 많은 곳이 아니라서 오카야마를 당일치기로 갔다 오기로 하고 이걸 샀다. 공항 2층 JR간사이공항 역에 아예 패스만 전담하는 창구가 있었고, 여기서 결제함.
신오사카-오카야마 구간은 산요 신칸센을 탈 수 있었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려주는 덕분에 오카야마까지는 4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패스로는 자유석만 탈 수 있는데, 자리가 없으면 입석(...)으로 타고 심장 쫄깃하게 가야 한다. 이걸 탔던 날 일본은 기상이변(?)으로 신칸센이 무더기로 지연됐었고, 고속철도를 입석으로 타고 갔다.
오카야마시 한다야마식물원을 보고 다시 오카야마역으로 돌아왔다. 고라쿠엔까지는 조금 멀긴 하지만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고라쿠엔 근처 상가에서 점심을 때우고 고라쿠엔을 갔다. 고라쿠엔만 간다면 입장료는 400엔이고, 오카야마성+고라쿠엔 패키지 입장권은 560엔이다.
점심을 먹고 나니 빗줄기가 굵어져서, 여기서는 A7R2에 sel2470z를 끼고 들어갔다.
정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큰 호수가 보였다. 여태껏 교토와 오사카에서 보아왔던 작은 정원들에 딸린 연못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였다.
호수 사이사이에는 섬과 다리가 있고, 얕은 언덕에 전망대 비슷한 것이 있었다.
호수 바깥쪽 길에서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가 우거진 곳들이 많이 있었다. 여태껏 교토나 오사카에서 봐왔던 정원처럼 작은 숲처럼 빽빽하진 않고, 정원과 정원 밖을 나눠놨다 정도의 느낌이었다.
다른 정원과는 다르게, 정원 안에 녹차밭과 텃밭이 있었다.
나무들은 다양한 종류가 심어져 있었는지, 아직 초록이 가득한 것부터 다 떨어져 가지만 남은 것들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정원에서 꼭 보였던 폭포는 여기에도 있었다. 폭포라고 하기엔 다들 민망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물이 급격히 떨어지는 구간이 꼭 있더라.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다양한 풍경이 나온다. 조금 전만 해도 단풍나무나 가지만 남고 다 떨어진 나무들이 보이다가, 갑자기 열대지방 느낌이 난다.
정원 서쪽은 큰 나무들이 많았다. 정원 둘레를 메우고 있어야 할 것들이 여기 다 몰려 있는 느낌이었다.
비는 점점 더 많이 내렸고,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사람들은 하나둘씩 나가고 있었다.
비록 잠깐 동안이었지만, 숲 속 느낌을 받고 나왔다.
카메라에 넣어둔 메모리가 꽉 찰 때까지 사진을 찍고, 문을 닫기 전에 오카야마성으로 갔다.
오카야마성은 박물관 느낌이 났다. 고궁에 있는 유물 보는 느낌.
6층 전망대에서는 고라쿠엔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권력자가 정원을 내려다보며 흡족해할 만한 느낌이다. 뭐 지금은 성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21세기다.
흑간지를 내뿜는 성을 한 바퀴 돌은 뒤, 오카야마 일정을 끝내고 다시 오사카로 돌아갔다.
여행은 마치 실기시험을 보는 기분이다.
일정을 무한정 짤 수도 없고 다시 오기도 힘드니, 아는 것들과 감각적으로 익힌 것들은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비록 비가 왔고 레인커버를 끼고 찍는 것은 엄청 귀찮았지만, 정원을 찍는 내내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았다. 이것보다 더 잘 찍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더 고민해봤을 텐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정원은 아름다웠고, 일본에서 돌아올 때에도 계속 이 곳이 생각났다.
LumaFonto Fotografio
빛,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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