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바람이 불던 숲
비가 내린 다음날 오사카는 따뜻하다 못해 더웠다. 낮기온이 거의 20도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팔을 걷어붙이고 다녀야 했다. 여전히 겨울옷에 목도리에 마스크까지 쓰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래도 길을 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조금은 가벼워져 있었다. 바람을 막을 만큼만 적당히 입고 나갔다.
오사카 근처를 찾아보니 식물원이 두 군데 있었다. 나가이식물원과 사쿠야코노하나칸이 있는데, 나가이식물원을 먼저 가기로 했다.
나가이식물원도 주유패스로 들어갈 수 있다. 주유패스 가이드북에는 쿠폰을 잘라다 내랬는데, 딱히 안 잘라줘도 되는 듯.
나가이식물원은 나가이 올림픽공원 안에 있다. 잠실 올림픽공원을 보는 느낌이었다. 비둘기도 많고.
비도 안 오는 날이니, 마음 편하게 loxia 2/35를 챙겼다.
나가이식물원 입구 근처에는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이 있다. 여기도 주유패스로 들어갈 수 있고, 패스 값 본전이 생각나서 일단 갔다.
중고딩들이 여기를 보기 위해 많이들 찾는 모양이다. helix fossil과 몸통만한 바퀴 모형과 버튼 누르면 작동하는 여러 모형을 보고 다시 나가이식물원을 찍기 위해 나왔다.
식물원 입구에는 아기자기한 꽃들이 많았다. 역시 따뜻한 남쪽나라는 1년 내내 꽃이 피는 모양이다.
꽃들의 높이는 다들 낮았고, 대부분을 쪼그려 앉아서 찍었다.
중간에는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이 자리 잡고 있다. 모형 수준으로 크기를 엄청나게 축소해 놓았다. 이끼는 없고, 연못과 섬, 낮은 풀과 나무들로 채워져 있었다.
일본을 가는 내내 내가 둘러본 모든 정원에는 동백꽃이 피어 있었다. 근접해서 꽃술에 포인트를 주기에는 동백꽃의 꽃술은 넓게 퍼진 형태이므로, 근접 촬영은 가급적 자제하고 풍경스럽게 잡았다. 심도는 대체로 낮추면 좀 더 나은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는 듯.
장미정원으로 가는 길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숲 사이로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좀 더 가볍게 입고 왔어도 됐는데.
정원 한편에 엄청 높은 야자수들이 있었는데, 좀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장미정원에는 12월인데 장미들이 피어 있었다. 대부분 정원의 장미들은 모양이 그렇게 상상대로 완벽하진 않지만, 시들어가거나 활짝 핀 장미꽃도 나름 아름답다.
근처 허브원에도 라벤더 꽃이 피어 있었다.
모란원, 작약원 등 여러 꽃이 피는 정원들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제 철이 아니라 그런 꽃들까지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은 초록빛을 띄고 있었다.
식물원 북쪽과 중앙의 숲은 낙엽들이 꽤 쌓여 있었다. 숲 중간중간에 동물 모형이 놓인 게 눈에 띄었다.
초록빛이 돌던 동쪽 정원과는 달리 이곳은 약간 우리나라 식물원의 늦가을 풍경 느낌이 났다.
세콰이아 숲에 들어서니 잠깐 햇빛이 나오다가 말았다. 나뭇잎은 다들 갈색 빛으로 변해 있었고,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마치 눈이 내리듯 떨어지고 있었다.
숲과 정원 구역들을 모두 돌아본 후, 중앙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호숫가에 오니 바람이 더 세게 불었지만 그다지 춥진 않았다.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호숫가를 돌았다.
전날 내린 비가 아직 덜 말라서 의자에는 앉기 힘들었다. 호숫가에는 새들이 많았고, 다들 한 장소에 가만히 서서 호수를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식물원을 나와서 점심을 먹기 전에, 공원을 마저 둘러봤다. 공원의 나무들은 식물원의 나무들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산책하고 있었다.
이 곳은 마치 물향기수목원과 분위기가 비슷한 느낌이다.
나무가 많다는 점에서는 교토부립식물원 느낌도 나지만, 교토부립식물원과 달리 온실 구역이 조금 빈약하고 거대한 느낌은 별로 없다.
식물원이 좀 넓은 편이라 다 둘러보는 데 두 시간 정도를 쓴 것 같다. 할 것도, 살 것도 많은 오사카라 이런 곳은 작정하지 않은 이상 오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여행 일정 중 한적한 분위기가 필요하다면 이 곳도 괜찮을 것 같다.
LumaFonto Fotografio
빛,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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