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지수목원의 겨울
올해 설 연휴는 대체휴일 덕분에 다행히 길었다. 시간이 남아서 지인과 함께 어딜 갈지 고민하다가, 차로 갈 수 있을 곳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파주, 우음도, 인제 등 여러 곳들을 꼽아 보다가, 파주를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이날은 벽초지수목원에 들렀다. 모두가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 파주에서 상당히 깊숙한 곳에 있었다. 1시간 정도를 끊임없이 달려서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설 연휴에도 문을 열었는데, 입장료가 주말에는 8,000원이더라.
수목원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니, 잘 다듬어 놓은 정원이 있었다. 아무도 없던 겨울 정원은 황량한 느낌마저 들었다.
정원 주변에는 석상들이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었고, 정원 주변을 제외하면 높은 나무들이 없었다. 인물을 세워놓고 찍는다면 배경이 잘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넓은 광경이 펼쳐져 있고, 주변을 돌다 보면 아기자기한 포인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름은 되어야 괜찮을 것 같은 곳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더 깊이 들어가면 자작나무 숲 구역이 있다는데, 숲이라 하기에는 조금...
입구 오른쪽의 정원을 빠져나와 본관 주변으로 나온 길을 따라 걸었다. 겨울철 오전 햇살은 꽤 강해서, 말라비틀어진 것들에도 따스한 느낌이 깃들고 있었다.
수목원 중앙에는 호수가 있다. 여름에는 연꽃으로 가득 찼을 호수는 두껍게 얼음이 얼어 있었다.
드라마 촬영지라고 자랑스럽게 걸어놓은 표지판 너머로는 침엽수로 만들어진 터널이 펼쳐져 있었다.
겨울이라 안심하고 들어가서 이것저것 찍어볼 수 있었다. 여름이라면 여길 들어가기 전에 기도라도 하고 들어갔겠지. 꽃과 초록을 좋아하지만, 벌레는 싫다.
나무터널을 지나 정원길을 따라가다 보니, 잔디밭과 세콰이어길이 나왔다.
햇살은 얇은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들어왔고, 11월의 갈색 잎들은 다 떨어졌는지 초록 잎으로 돌아와 있었다.
처음의 넓은 정원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마치 인물촬영 배경에 어느 정도 신경 쓴 것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
입구 근처에는 낮고 높은 작은 정원들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 대체로 작은 것들과 조형물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가이식물원이 생각났다.
입장료를 내는 가기 불편한 곳에 있는 정원 치고는, 정원 자체를 꼼꼼히 살펴보기에는 너무 좁은 것 아닌가 싶다. 한창 꽃이 피는 계절이라면, 입구 주변의 정원은 확실히 화려할 것 같다. 다만 너무 좁다. 마치 2시간짜리 영화의 2분 30초짜리 트레일러를 보는 느낌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오기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이 곳은 내 생활권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비록 비슷한 입장료를 받는 정원들에 비하면 전체적인 매력은 확실히 떨어지지만, 꽃이 만발할 때 다시 찾아보고 싶다.
w/ A7R2, Loxia 2/35
LumaFonto Fotografio
빛,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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