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정원에 햇살이 들어왔다
교토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오사카로 이동했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해버리고, 기차를 잘못탄 탓에 모든 역에 다 서는 1호선st 열차를 타고 갔다. 마침 출근시간이었고, 일본 출근길 풍경은 그냥 1호선 타고 신도림을 빠져나와 인천 방향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어르신들은 페북을 하고 있었고, 중고딩들은 아이돌 공연 영상을 보고 있었다.
먹고, 도톤보리 글리코 간판 보고, 쇼핑하는 것만 유명할 줄 알았던 오사카에도 잘 살펴보면 정원이나 식물원이 있다. 오사카에 오기 전 꼽아봤던 여러 정원들 중 이날은 시텐노지부터 갔다.
난바에서 시텐노지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좀 거리가 있는 편인데, 그래도 오사카를 처음 와 봤으니 시내도 둘러볼 겸 걸어서 움직였다. 시텐노지 앞에 가니 수학여행 비슷한 거라도 온 듯 학생들이 많았고, 도심에 있는 절이라 그런진 모르겠지만 기부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텐노지는 중심가람과 본방정원(혼보테이엔, 本坊庭園)이 유료다. 부분 유료화지만 주유패스를 갖고 있다면 돈을 낼 필요는 없다. 패스 보여주면 패스에 붙은 바코드를 찍은 다음, 중심공원과 혼보정원 입장권으로 바꿔준다.
A7R2에는 전날 끼워뒀던 sel2470z를 계속 썼다.
중심가람은 중앙 한쪽 건물이 공사 중이었다. 특이하게, 교토에서 계속 봐왔던 모래 평원이 정원이 아닌 여기에 있었다. 회랑을 따라 동선이 짜여 있었고, 한쪽 건물에는 거대한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중심가람은 혼자 격리된 구역인지라 혼보정원으로는 바로 갈 수 없었다. 중심가람을 빠져나와, 혼보정원에 가기 전 시텐노지 나머지 구역들을 돌아봤다. 여긴 마치 덕수궁과 탑골공원이 섞인 느낌이었다. 한국에서나 볼 줄 알았던 비둘기도 많았고, 어르신들이 기도를 올리던 곳들이 있었다.
혼보정원에 가기 직전에 관광객 출입금지구역? 비슷한 게 있었다. 다행히 앞에 경찰 아저씨가 혼보정원 가는 길을 알려주심. 혼보정원 앞에 매표소가 있고, 아까 주유패스 보여주고받은 티켓을 보여주면 된다. 내가 시텐노지에 갔을 때는 온 사방이 공사 중이어서 길이 엄청 헷갈렸다.
혼보테이엔 입구에선 한창 스님들이 불경을 외고 있었다. 한창 법회 중인 것 같다.
정원에 들어서니 한편에 폭포와 강이 흐르고 있었다.
호수는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호수 사이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작고 얕은 호수에는 대체로 낮은 나무들 위주로 배치되어 있었고, 여기에도 폭포가 있었다.
정원 안은 바깥에 비해 의외로 사람이 거의 없어 고요했다.
정원 안쪽에는 입구 쪽 호수보다 더 크고 깊어 보이는 호수가 있었다. 덕수궁 석조전을 보는 느낌의 정자나 현대식 건물 사이에, 큰 나무들이 주변에 우거져 있었다. 교토의 다른 정원들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정원 주변은 나무와 건물이 둘러싸고 있더라.
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안쪽에는 사원 건물들이 있었다. 건물 주변에는 높고 큰 나무들이 많았다.
정원 주변은 교토와 마찬가지로 높은 나무들이 정원 바깥 구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있었지만, 요즘 건물이 더 높아진 탓에 정원 주변으로 건물이 보였다. 간간이 트럭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소음은 나무들 덕분인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뭐 그래도 도시와는 동떨어진 한적한 느낌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정원을 나올 때에도 입구 쪽에서 들려오던 불경 외우는 소리는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들렀던 정원 대부분은 절 안에 있는 곳이었다.
운이 좋다면, 불경 소리로 가득 찬 정원에서 무언가 벅찬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햇빛을 받고 꽃과 초록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건 크게 다르진 않다.
LumaFonto Fotografio
빛,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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