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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샘 Jul 28. 2016

태고의 초록

2016.07. 제주 정원여행 - 곶자왈도립공원

제주도에는 곶자왈이란 곳이 있다. 몇 년 전, 나는 여길 가보려다 검색 결과가 무려 네 곳이나 나오길래 대체 진짜 곶자왈이 어디냐며 좌절하고 안 갔던 적이 있었다. 육지로 돌아와서 사전을 찾아보니,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제주도의 독특한 숲 또는 지형을 일컫는다.'라고 되어있더라. 그냥 고유 명사구나.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반드시 곶자왈을 가기로 마음먹고, 마침 생각하는정원 근처의 곶자왈환상숲을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에나 문을 여는 일정 탓에 아예 곶자왈도립공원으로 향했다. 사람이 북적이던 오설록티뮤지엄에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가는 동안 계속 영어마을 한가운데에 도립공원이 있는 게 믿기지 않았는데, 진짜 있었다.


   






먼저 들어가기 전에, 기피제를 두 겹으로 바르고 들어갔다. 냄새가 역하고 피부에서 따가움이 올라왔지만 내 피는 소중하니까.

여기는 길이 마름모꼴로 되어 있다. 가운데는 지름길 비슷한 것이 있는데, 나는 마름모꼴 길을 크게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숲 처음부터 엄청난 고사리들과 내려오는 덩굴과 비를 머금은 잎들이 나를 반겼다.



심도를 많이 올리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변부를 건지고 싶거든 크고 비싼 렌즈를 쓰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입구 근처~마름모꼴 아래 지점과, 마름모꼴의 남동쪽 방향은 테우리길이라고 한다. 마름모꼴 길로 진입하기 전에는 아직 중간중간 바깥이 보인다. 아침에 분명 비가 많이 왔을 텐데, 절물처럼 늪이 생긴 곳은 거의 없어서 쾌적하게 걸을 수 있었다.  


물론 셔터스피드가 안 나와서 호흡을 고르는 동안 렌즈에 모기 세 마리가 내려앉은 것을 보기 전까지 예기다.



쥬라기대모험


고대의 숲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자림이 아늑함이고 절물자연휴양림이 웅장함이라면, 이곳은 신성함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느낌은 굉장했지만, 막상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한여름에 숲이라 벌레나 뱀이 나올까봐 두려웠는데, 다행히 벌 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나무데크가 깔려있지 않은 구간은 중간중간 한라산 성판악코스 초반 느낌으로 돌이 너무 많이 깔려있었다. 발이 아프다. 기껏 나무데크를 만나면 여긴 또 미끄러워서 문제고.



 



걷다가 옆을 돌아보면, 숲이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분명 셔터스피드는 2.0에 iso1600에서도 심심하면 1/60에 심하면 1/30까지 떨어졌는데도 내 눈에 들어온 숲은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마치 옛날부터 긴 시간 동안 전해진 어두운 별빛이 내게 닿는 느낌이었다.



  

뭔가 쉼터가 아니라 헌혈의집 느낌인데



한수기길로 접어들면서도 계속 앞과 뒤, 옆을 돌아보며 찍기 괜찮은 지점을 살폈다. 어떤 곳은 나무가 어설프게 시야를 가렸고, 어떤 곳은 거리감이 아쉬웠다. 조금만 멀거나 더 가까웠더라면.


이곳은 테우리길보다는 조금 더 밝았다.





하지만 공기는 맑고, 숲은 빛났다.  





어느덧 절반을 돌고, 나머지 절반이 남았다. 왼쪽 마름모 절반 부분은 오찬이길이라 하더라. 날은 덥고, 길은 미끄럽거나 단단하고, 흘러내리는 땀은 마치 벌레가 붙은 것 같아 불쾌해서 순간 길이고 뭐고 지름길로 바로 나가고 싶었지만, 아직 내겐 못 본 숲이 많이 남아있었다.



리본 없었으면 다른 길로 샐 뻔했다.



중간중간 빽빽한 지역이 있었지만, 대체로 길은 평화로웠다. 여기서부턴 바위가 좀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더니, 갑자기 이상한 풍경이 내게 다가왔다.

안개와 구름이 짙게 깔린 공기에, 못 보던 침엽수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이 지점에서 조금 더 가면 전망대가 있었다. 대충 건물 6-8층 높이 정도인 것 같았는데,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갔다.





마치 성운과 구상성단을 보는 느낌의 풍경이 내게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 흩어진 모든 초록이 과거에는 마치 이 한 지점에 모여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빨리 사진을 담고, 남은 시간은 카메라를 집어넣고 무한한 숲 속에서 한참 동안 온 사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한참 후, 나는 나머지 길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여름의 숲은 엄청 습하고 뜨거워서, 몸은 더워하는데 마음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를 여기서 보냈더라. 모기기피제를 철저히 바르고 가야 안전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는 이제 2017년부터 유료로 전환된다고 입구에 적혀있더라. 물 구할 곳이 마땅찮아서 미리 물을 들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절물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35mm 화각으로는 이런 숲 배경을 잡기엔 뭔가 아쉽게 넓은 느낌이 들었다. 50mm 이상 화각처럼 어느 정도 부분을 강조해줄 수 있거나, 24mm 화각처럼 아예 광활한 느낌을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더라. 거리감의 아쉬움보다는 어설프게 거슬리는 나무를 피해 구도를 잡는 것이 조금 많이 힘들었다. 이번 여행에선 일반 촬영용 렌즈를 35mm 하나만 들고 온 탓에, 2470을 가져왔더라면 하는 후회가 살짝 들었다.


곶자왈을 다 돌고, 나는 상효원으로 향했다.





w_ A7R2, Loxia 2/35




LumaFonto Fotografio

빛나는 샘, 빛샘의 정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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