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 제주 정원여행 - 상효원
제주에서 거의 이틀 동안 나는 거의 대부분 초록 풍경들만 봐왔다. 제주도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 다시 가보고자 했던 숲과 언젠가 가보고 싶었던 숲까지 모두 돌아보았다. 처음 제주를 여름에 가자고 생각했던 것처럼 수국이 만발한 제주를 언제쯤 찍어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본래 계획대로 상효원에 가보기로 했다.
여기라면 분명 꽃이 가득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제주도에 단 두 개의 렌즈만 가지고 갔다.
하나는 35mm 수동렌즈였다. 최대 개방에서 주변부 화질은 떨어졌지만, 현행 렌즈다운 빼어난 선예도를 갖추고 있으며, 배경 흐림은 현행 렌즈에서 볼 수 없는 고풍스러운 느낌이 있는 렌즈다.
다른 하나는 180mm 마크로렌즈였다. 현행 망원 마크로렌즈 중에서는 최고의 성능을 가진 렌즈다. 무게도 최고긴 하지만...
원래 여행 때는 무게 때문에 90mm 마크로렌즈를 가져가려 했으나, 언젠가는 반드시 먼 길을 떠날 때 90mm 대신 이 렌즈를 써보고 싶어서 여행용 가방까지 따로 장만했다.
그리고 여기서마저 비가 왔다.
하지만 이럴 줄 알고 레인커버와 비옷을 챙겨 왔다. 아예 작정하고 사진을 만들어볼 생각으로.
입구 근처 요름정원에는 원추리들이 한창 비를 맞고 있었다. 대부분의 꽃잎들은 물방울을 동그랗고 예쁘게 잡아놓는다.
자귀나무도 이때쯤이면 한창 꽃을 피운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기분은 좋지만 접사를 찍을 땐 이 정도의 바람도 누가 나무를 발로 차며 거세게 흔드는 듯한 기분이다. 어렵다.
취향은 아니지만 마침 거미줄이 좀 많길래 거미줄 놀이도 해봤다.
엄마의정원으로 가는 길에는 푸른 수국이 피어있었다. 역시 제주는 제주다.
엄마의정원 부근에는 낮은 꽃들이 많이 보였다. 망원 마크로렌즈를 가져간 덕에, 금지구역 한가운데에 있는 꽃들을 매우 가까운 느낌으로 당겨서 담을 수 있었다. 꼭 마크로렌즈라고 해서 반드시 1:1 접사만 찍으란 법은 없더라. 그냥 동일화각대 망원렌즈라 생각하고 활용해 보면, 최소초점거리 근처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렌즈들의 0.15~0.25 정도 배율보다 훨씬 더 근접해서 찍을 수 있다. 망원화각 특유의 높은 압축률로 배경을 다 뭉개주는 건 덤.
넓고 시원하게 담으면 알맞을 장소들이 꽤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비가 많이 쏟아져서 렌즈를 바꿔낄 수는 없었다. 이런 어정쩡한 구도를 개인적으로 싫어하지만, 굳이 담고 싶어서 멀찍이 뛰어가서 담았다.
여름에 볼만한 꽃들은 다 모여있었다. 백합 비슷한 것들과 데이지 비슷한 것들이 가득 모여있다. 봄꽃만큼의 밀도는 떨어지지만, 그보다 더 거대하며 다양한 매력을 지닌 꽃들이 무리 지어 피는 게 여름 꽃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도체비정원 근처는 정말 다양한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다. 이맘때쯤 피는 꽃부터 시작해서, 지금쯤이면 다 졌겠지 생각했던 꽃들과, 이제 슬슬 필 준비를 하는 꽃들이 어울려 있었다.
그렇게 총천연색이 내게 물결치며 다가왔다.
그 옆에 수국이 또 가득 있었다. 아직 어린 나무들이었는데, 마치 낮은 구름이 깔린 것 같았다. 날도 흐려서 빛이 별로 없는데다, 빗방울이 꽃잎에 떨어지는 충격만으로도 사진이 흔들렸다.
꽃의정원과 도래물정원 근처에 오니 슬슬 비비추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 비비추들은 뭘 먹고 자랐는지 키가 엄청나게 컸다. 연못에는 연꽃이 많기를 기대했지만 생각만큼 피어있지는 않더라.
허브정원 근처에는 작고 작은 것들이 있었다. 잎도 꽃도 모두 귀엽다.
허브정원을 넘어서니 웬 언덕길에 수국이 한가득 피어있었다. 육지에서 흔히 보던 파란 산수국이나 하얀 나무수국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수국들이 피어있었다.
2색 산수국이라니 세상에... 이런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분명 산수국이나 수국의 형태인데, 이런 색과 이런 크기가 존재했었나 싶은 것들도 있었다.
이젠 당연하게 느껴지는 하얀 나무수국과,
이쯤 되면 제주의 색이라 느껴질 만한 하늘색 수국에,
강렬한 보랏빛 수국까지 여러 수국이 어우러져 있었다.
만약 꽃으로 된 바다가 있다면, 틀림없이 이런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내 눈 앞에 펼쳐진 모습도 그러했다.
모기가 많았던 비밀의정원 근처를 지나고,
출구 근처에 비비추들이 몰려있었다. 아쉽게도 그 다양한 수국에 비해서, 비비추의 품종은 흔한 보랏빛 품종 하나뿐이었던 것 같다. 비비추를 찍다 보니 한택식물원을 가고 싶어졌다.
압도적인 정원 규모에 비해 온실은 초라할 정도로 작았다.
사실, 이렇게 정원이 압도적이라면 온실이 별로 눈에 들어오진 않을 것이다.
입장료가 9,000원이나 하는 정원인데, 역시나 이런 정원은 아직까지 날 실망시킨 적이 없다. 땅을 굉장히 넓게 쓰는 정원이라 굉장히 시원시원했다. 규모에 걸맞게 잔디밭과 꽃과 숲이 어우러져 마치 여기만 다른 지역인 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숲 구역을 모조리 패스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원 전체를 도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풍경용 렌즈와 접사용 렌즈를 구해가면 하루 종일 여기서 놀아도 될 정도로 거대한 정원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렌즈를 갈아 끼우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여행길에 처음으로 마크로렌즈를 쓴 만큼, 이날 남은 체력 모두를 이곳에 쏟아붓고 사진을 담았다.
다음에 여기를 다시 온다면, 4월이나 5월에 와보고 싶다.
w_ A7R2, Sigma 180mm F2.8 APO macro
LumaFonto Fotografio
빛나는 샘, 빛샘의 정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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