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림 Nov 27. 2019

'초보' 작가의 신념(?)

첫 출간의 소회

글쓰기는 가장 외로운 예술이다.

- 조이스 캐롤 오츠 '작가의 신념' 중


지난 여름 국제도서전을 보러 서울 코엑스에 갔다. 엄청나게 많은 양서들이 전시된 책의 개울에서 제일 먼저 주워담은 책이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가의 신념'. 이제 진짜 '작가'가 되는구나. 나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평생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 내가 소멸되더라도 세상에 남길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낳은 아이는 나의 '흔적'이라기보다는 나를 통해 존재의 문을 열고 나온 새로운 우주다. 내 생각의 일부를 전달하고, 내가 해온 방식으로, 좀 더 인문학적으로, 좀 더 콘텐츠적인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40여 년 살아온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적합한 매체는 '책'이었다. 그래. 책을 써보자.


글쓰기는 꽤 자신이 있었다. 글이 말보다 편한 건 확실했다. 졸업을 하고 자연스레 글에 관한 직업을 구했다. 글을 잘 쓰는 이의 글을 찾아서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내 글을 쓰고 주물럭거리는 일은 늘 지루할 새가 없다. 어딘가에 글을 한편 쓰면, 그게 잡지든 포털이든 블로그든 간에 혼자서 수십 번을 더 고치고 읽어보기를 즐겼다.


무엇을 써야 할까? '그릇' 만들기는 자신이 있었지만, 무엇을 담을지가 고민이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IT과학을 쓸까?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나 음악, 육아, 고양이도 주제가 될 수 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미국에 갔고 뜻하지 않게 많은 곳을 여행 다녔다. 남편은 책을 한번 써보길 권했다. 그 시간과 과정, 열심히 찍어놓은 사진들을 그대로 썩히기 아깝다는 생각에 미국 여행책을 써보기로 했다.


출간은 쉽지 않았다. 잡지에서는 20년의 경력기자가 단행본에서는 초짜 신인이다. 지금의 출판사 대표님을 처음 만나러 가는 날, 수년 만에 다시 취업 면접을 보는 듯 떨렸다. 미국 여행을 주제로 의미 있는 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대표님의 말씀은 긍정적인 답변을 넘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꿈에 그리던 출판 계약을 하고 초고 쓰기에 돌입했다. 내용은 논픽션이지만, 여행지마다 최대한 스토리를 담아보려 애썼다. 그 작업은 매우 힘들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지리산 자락에 가서 모닥불을 피우고 노트북을 열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나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그렇게 '외로운' 겨울을 통과했다.


초고를 힘들게 완성했지만, 끝난 게 아니다. 잡지와는 또 다른 단행본의 세계에서 나는 허우적거렸다. 자신감이 오르락 내리락 요동을 쳤다. 근 한달만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원고지 1000매가 다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치고 또 고쳐서 97%의 완성도라 믿었던 글이 며칠만에 다 엉터리로 보였다. 이 글을 누가 읽어줄까? 누가 '사'줄까.


반년이 지나고, 사진 셀렉과 편집, 교정 등 반복되는 작업들이 본격적으로 이어지며 머리보다 몸이 바빠졌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웠는지 모르겠다. 컨디션이 급속히 떨어졌다. 왜 대작가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갔는지 알 것 같았다. 다시 만난 가을의 끝에서, 2년간 미국이라는 넓은 땅덩이를 누비고 다닌 400페이지의 대장정이 끝났다.


산고 끝에 얻어낸 결과물을 보며 약간의 만족감을 느껴도 될는지,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과학기사로 포털에서 대중을 만날 때와는 또 다르다. 왜 '첫 번째' 책을 내 이야기로 정한걸까.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준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이건 어디까지나 시작이라 믿는다. 다음에는 긴장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지적 몰입도가 높은 지식서나 완벽한 허구의 소설도 한번 써보고 싶다.


언젠가 과학잡지에서 글쓰기에 대한 책을 만들며, 서문에 좋은 글이란 '잘 지은 집'과 같다고 적었다. 어떤 글이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따라오도록 탄탄한 구조를 만들려고 애쓴다. 튼튼한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에 지붕을 차곡차곡 얹으면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집이 된다. 그 과정에서 벽은 통나무로 할까 벽돌을 쌓을까, 현관문은 무슨 색으로 칠할까. 숱한 고민을 한다.


그 집은 방과 방을 이어주는 마루가 있고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사랑방이 있다. 사람들은 작은 앞뜰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향긋한 따스함을 즐기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간다. 나는 그때의 햇살과 나무 냄새와 신선한 바람을 느끼고 싶다.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오늘의 초심을 잃지 않는 내일의 작가가 되겠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84185756

매거진의 이전글 우주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