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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림 Nov 15. 2019

우주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는 곳

휴스턴 나사 존슨 우주센터

“휴스턴, ‘고요의 바다’에 도착했다. 휴스턴에서의 멋진 뒤풀이를 기대하며 달에서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겠다. 로저.”


1969년 7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11호. 영화 ‘퍼스트맨’에서도 그려지듯이, 당시 달 탐사 임무를 맡은 닐 암스트롱과 크루들은 달 탐사를 하기까지 긴박하게 지상관제센터와 교신해야 했다. 그들이 끊임없이 부르던 ‘휴스턴’은 바로 휴스턴에 있는 나사 존슨 우주센터를 말한다.


미국에서 맞는 첫 해가 끝나가며 12월 31일에 무엇을 할지 고민이 생겼다. 친한 가족은 뉴욕 타임스퀘어에 가서 카운트다운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멋진 계획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며 보낼까? 뒤늦게 텍사스까지 4000킬로미터 거리의 장거리 여행을 계획해 떠났다. 그 여정에서 우연찮게 12월 31일에 휴스턴 나사 존슨 우주센터를 지났다. 한 해를 떠나보내는 날, 아폴로 11호의 역사가 남아있는 우주센터를 방문한 느낌은 남달랐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부터 텍사스 오스틴을 향해 며칠간 쉼 없이 달려왔다. 드디어 목적지에 가까운 휴스턴에 다다랐다. 휴스턴에도 볼거리가 많지만, 빠듯한 일정에 오로지 나사 우주센터 방문만 계획했다. 인근 호텔에 묵고 아침에 일어났다. 짐을 정리하며 TV를 켰는데, 까만 화면 속에 동그란 달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달과 함께 천문학 정보들이 나타났다. 나사에서 송신하는 화면이 방영 중이다. 우주센터에 한 발짝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휴스톤에서 묵은 호텔에서 나오던 TV 화면

지호는 평소에 인형이나 공주놀이보다 로봇과 공룡놀이를 더 좋아한다. 우주도 큰 관심사 중 하나다. 그런 지호에게 우주를 가까이 보여주고 싶기에 나사 우주센터에 한 번쯤 오고 싶었다. 과학과 우주, 탐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꿈같은 곳이다. 나 역시 명색이 과학 기자가 아닌가. 우주탐사 소식을 전할 때면 늘 호기심이 발동하고 가슴이 벅찼다.  


휴스턴에 오기 전에, 플로리다 올란도에 있는 나사 케네디 우주센터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은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우주선 콜럼비아호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케네디 우주센터는 스페이스X와 나사의 로켓 발사를 실제로 지켜볼 수 있는 곳이다. 플로리다의 우주센터가 ‘현재’의 모습이라면, 휴스턴 우주센터는 미국 우주탐험의 ‘과거’를 보여준다. 아폴로 11호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할 당시, 지상의 모든 관제탑 역할을 휴스턴 우주센터가 맡았다. 그때 이후 휴스턴 우주센터에는 달 탐사의 모든 역사가 보존되어 있다.

플로리다의 나사 케네디 우주센터

휴스턴 존슨 나사센터에 들어서며 멀리서부터 선명한 파란 로고가 보인다. 나사를 상징하는 파란 동그라미다. 센터 안은 연말인데도 관광객이 꽤 많았다. 센터의 부지는 무척 넓어서 내부 순환하는 트램을 타야 한다. 트램의 트랙은 두 가지인데 우리는 미션 컨트롤 센터와 새턴V를 돌아보는 트랙을 선택했다. 사방이 트여있는 코끼리 열차 같은 트램에 올라탔다. 지호는 마냥 좋아한다. 트램을 타고 돌아본 센터 안은 넓은 연구단지 같은 느낌이다. 낮은 층의 건물들이 띄엄띄엄 있다. 멀리 잔디밭에 야생 사슴이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휴스턴 존슨 나사센터


트램에 내려서 간 곳은 아폴로 우주선을 컨트롤했던 관제탑이다. 잘 보존된 컨트롤 센터 내부는 달처럼 고요하다. 옛 시청각실처럼 경사진 VIP 관객석이 층층이 놓여있다. 통유리를 통해 바라본 컨트롤 센터는 1960년대 모습 그대로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시도하던 날, 급박했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누군가는 빨간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는 시스템 콘솔을 만지며 우주비행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마침내 달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환호했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컨트롤 센터

로켓과 박물관을 둘러보고 이동한 곳은 대망의 새턴V가 전시된 곳이다. 새턴V는 휴스턴 나사 존슨 우주센터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다. 새턴V는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실제 아폴로 달 탐사를 위해 우주인을 실어 보내는 용도로 쓰인 로켓이다. 지금 휴스턴에 전시되어 있는 새턴V는 미사용 발사체다.

새턴V

컨테이너 건물을 열고 들어가니 거대한 로켓이 누워 있다. 28미리 광각렌즈로 담기에 빠듯하다. 길이가 무려 110미터, 무게는 2800톤에 달한다. 새턴V를 가까이서 보니 그 크기가 가히 압도적이다. 벽면에는 아폴로 1호부터 최근 17호까지 우주선을 탔던 비행사와 스토리가 적혀있다. 모든 자료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보존하고 기억하는 노력이 엄청난 규모의 우주개발사업을 추진해온 동력이 아니었을까.

램에 내려서 실내 박물관에 들어갔다. 반짝이는 조명과 다양한 우주 체험 기구들이 있어 테마파크에 온 느낌이다. 중력 의자, 3D 우주관람관, 화성 탐사선 등 아이들이 직접 과학과 우주를 체험해볼 수 있다. 네 살배기 지호에게는 원리를 설명해주기 힘들었지만, 초등학생 이상만 되어도 충분히 즐기고 배울 수 있는 수준이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내부가 어두워지며 우주 섹션이 나왔다. 스페이스 셔틀을 보러 가는 길이다. 셔틀의 내부를 샘플로 보여주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우주선의 내부는 벽면이 둥글고 좁았다. 무중력 상태에서 거꾸로 동그랗게 떠있는 비행사의 마네킹이 독특했다. 옆에는 우주선 안에서 샤워를 하는 비행사의 모습을 재현해놨다.

달 착륙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달에서 온 암석인 월석 조각이다. 약 3센티미터 안팎의 다각형 모양인데 짙은 검회색이다.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게 해 놨다. 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손을 뻗고 있다. 나도 손가락을 뻗어 월석 위에 슬며시 올렸다. 촉각으로 느껴지는 달의 느낌은 만질만질하면서도 무언가 신비롭다. 크레이터 운석 박물관에서 만져본 운석 덩어리와도 느낌이 비슷하다. 우주에서 온 암석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손끝으로 만져도 왠지 잡히지 않는 아련함일 것이다.

보잉747의 등에 업혀있는 스페이스 셔틀을 끝으로 센터 구경을 마쳤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려서 오락가락하던 하늘에서 햇살이 떨어진다. 초록 잔디밭이 빗물을 머금고 화사하게 빛난다. 잔디 위에는 길쭉길쭉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런데 그 아래 작은 묘비들이 보였다. 꽃다발도 하나씩 놓여 있다. 나사에서 우주 연구를 하다가 순직한 이들의 수목장 비석이다. 그러한 묘지가 꽤 넓은 지역에 걸쳐 있다.

휴스턴 나사 센터는 비단 우주개발에 대한 전시장만이 아니었다. 센터 안에 달과 우주탐사에 평생을 바치고 간 이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해놓은 것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다. 지구 밖 수백 광년을 넘어 뻗어나간 우주에 대한 열망은 결국 인간을 향해 되돌아온다. 우주를 좋아하는 지호에게나 과학 소식을 전하는 나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메시지였다. 우주를 사랑하기 이전에 인간을 더 사랑하는 곳. 달을 향한 인류의 짝사랑이 아름답게 기록되어 있는 휴스턴 나사 센터를 나오며 남다른 한 해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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