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대신 아이를 안은 날
아이가 세 살이 되자,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매일 아침 작은 손을 잡고 집을 나서면,
강재는 한 박자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텅 빈 시간 속에서, 그는 책을 폈고,
자격증을 하나씩 따갔다.
보육교사 2급, 사회복지사…
‘언젠가는 도움이 되겠지’
스스로에게 내민 약속 같은 자격들이었다.
그리고 꼭 들어가고 싶던 사회복지법인의 최종 면접을 앞둔 날 저녁,
강재는 서하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동안 당신 혼자서 다 하느라… 힘들었지.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좋겠어. 이제 나도 해볼게.”
서하는 놀랐지만, 말은 많이 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 중요한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하도 긴장 중이었다.
회사의 대표 앞에서 직접 발표를 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다음 날, 서하는 현관 앞에서 말했다.
“잘 될 거야. 걱정 마. 면접 잘 보고 와.”
강재는 웃으며 고은이의 가방을 들었다.
서하는 하이힐을 신고 먼저 나섰다.
강재는 서류를 다시 확인하고, 구두를 닦고,
아이에게 키스를 남긴 채 어린이집 앞에 섰다.
아이는 아직 눈꼽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아빠, 오늘은 늦게 와?”
강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아빠가 중요한 약속이 있어.”
“아빠 회사 가?”
“응, 회사에 갈지도 몰라.”
아이의 손을 선생님에게 맡기고 돌아서는 순간,
강재는 왠지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아이의 눈이 조금 붉었다.
콧등이 약간 번들거렸다.
하지만,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이다.
복도에는 똑같은 서류봉투를 든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강재는 입구 유리문 앞에서 두어 번 심호흡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각자 앞만 보고 있었고,
긴장감이 희미한 공기처럼 퍼져 있었다.
그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어린이집.
강재는 잠시 망설였고,
곧 전화를 받았다.
“아버님, 고은이가 열이 많이 나요. 지금 39도예요.”
“…”
“지금 데리러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병원도 가셔야 할 것 같고요.”
강재는 ‘지금 제가…’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 순간, 두 갈래의 시간이 갈라졌다.
한쪽에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시작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아이가 있었다.
눈이 부어오르고, 코가 막혀 울지도 못할 우리 아이.
“네. 금방 갈게요.”
전화를 끊고,
그는 조용히 서류를 접었다.
구두의 굽 소리가 면접장 바닥에 울렸다.
들어가는 대신,
그는 다시 유턴했다.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강재는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작은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그날 저녁,
서하는 퇴근 후에서야 아이가 아팠던 것을 알았다.
강재는 끝까지 서하에게 알리지 않았다.
오늘을 위해 서하가 얼마나 애써 달려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였다.
거실에는 아이가 작은 이불 위에 잠들어 있었고,
강재는 아이 옆에 누운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의 구두는 현관 구석에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올려진 면접용 서류 봉투가
조용히 구겨져 있었다.
그날, 어떤 시작은 무산되었지만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또 다른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서하는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이 내 아이의 아빠구나."
목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그 장면이 말하고 있었다.
이 남자는
내가 직장에서 받은 말 없는 경쟁과
끊임없이 줄타기하는 상실감의 한복판에서도
내 아이의 체온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사랑이라는 말보다 오래가는 것.
그건, 이렇게 조용히 쌓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서하는 알았다.
지금껏 자신을 위해 강재가 포기한 것이
이것 하나만은 아니었으리라는 것을.
그는 늘
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면접은 사라졌지만,
그날 하루는 오히려 선명하게 남았다.
그 장면이 서하의 마음에 서서히 가라앉았다.
소리없이 뭔가가 무너졌고 또 뭔가가 세워졌다.
그의 선택은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것이었고,
그것이야말로
서하에게 가장 큰 신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