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순간,손만 내밀어주어도..
어느 날부터 강재는
아이를 재운 후에도 불을 켜지 않았다.
거실에 앉아 조용히 휴대폰을 넘기거나,
설거지를 할 때에도
조명을 켜지 않고
싱크대 위의 조명 하나만 켰다.
서하는 알았다.
그가 지금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어디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자꾸 자신을 줄이는 방식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있다는 걸.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해?”
서하가 웃으며 물었다.
강재는 웃었다.
“조용하니깐 멋있지?.”
그 웃음은
그가 그의 마음을 숨길 때 자주 짓는 웃음이었다.
서하는 일부러
"아니~~!!"라고 크게 대답하곤,
다리 밑에 놓인 수건을 주워 빨래통에 넣으며 큰소리로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은것 같다.
다음날 밤,
서하는 일부러 퇴근을 조금 일찍 마쳤다.
마트에서 새우와 파스타 재료를 사고,
와인을 한 병 샀다.
강재가 좋아하는 노란 프리지어꽃도.
현관문을 열자
집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서하는 조용히 불을 켰다.
“뭐야, 무슨 날이야?”
강재가 물었다.
서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오늘 좀 와인이 고프네~.”
식탁에 둘이 앉았다.
고은이는 이미 잠들었고
서하가 잔을 따라주자
강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나…
요즘 좀 자신이 없어.”
강재가 말했다.
“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느낌이야.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는 시간 속에
내가 계속 멈춰 있는 것 같아."
서하는 천천히 말했다.
“당신이 왜 아무것도 안 해.
당신은 내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야..”
강재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잔에 담긴 불빛이 흔들렸다.
서하는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있다는 감각.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그날, 정확히 느꼈다.
가족을 이루는 일은
함께 살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한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지켜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