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반반 대신,존중이라는 균형
고은이는 일찍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다.
우리 부부는 고은이의 선택을 존중했다.
고은이는 무엇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젠 우리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아니다.
두 아들의 엄마다.
더 이상 우리가 챙겨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단단히 지키는 사람으로 자랐다.
언젠가, 그녀가 말했었다.
“나는 엄마 아빠 덕분에,
사랑이 어떤 모양인지 알고 자랐어.”
강재는 대학을 졸업하고
국제 NGO에 들어가 경험을 쌓았고
유학을 다녀온 후
모교에서 교수 제안이 들어왔는데도 뿌리치고,
시골에 작은 고아원을 짓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지금,
가장 자신다운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삶을 묵묵히 돕고,
감정을 나누되 앞서지 않으며,
항상 웃는 얼굴로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
그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오래 알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일하고 있다.
어느 순간 부터 일은 내게
의무감도 부담감도 생계도 아닌,
나의 일부가 되었다.
정년퇴직이 꿈이였는데.
곧이다.
퇴직을 하고 나면 강재 옆에 가서
같이 아이들을 돌보아야지-
우리는 서로를 똑같이 나누지 않았다.
누가 더 힘들고, 누가 더 많이 했는지
따지지 않았다.
그 대신,
서로를 지지했고,
서로의 방식을 존중했다.
사람들은 지금도 종종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남들과 다르게 살았냐”라고.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우린 그냥,
우리한테 맞는 삶을 살았을 뿐이에요.”
완벽한 반반이란 있을 수는 없다.
대신 존중이라는 균형으로
우린 서로 다른 자리를 지켰다
나는 밖으로, 그는 안으로
나는 앞에서, 그는 옆에서.
내가 버거울 땐 그가 채우고,
그가 지칠 땐 내가 견디고.
한 사람의 짐이
다른 한 사람에게 무게로 남지 않게
서로 조심하며 살아왔다.
완벽하진 않았다.
그래서 더 인간적인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알겠다.
그 시간들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는 걸.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가 아니라,
그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견뎠는지가
더 중요하다.
역할은 바뀌었고,
삶은 달라졌지만,
사랑은
여전히
서로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사랑은
평등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공평하려 애썼다.
우리처럼 끝까지 서로를 지켜낸 사람이라면,
평등하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공평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다시 걸어온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리를 나눈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켰다..
-결혼 35주년이자 강재, 서하 첫 결혼식날 서하의 일기 중에서 -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