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손 대신 빵 봉투를 들고

by 뤼미셀

일요일 아침 8시, 티브이 채널은 7번, 알람 따위 없어도 학교 갈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 나의 목표는 단 하나, 디즈니 만화동산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 분명 지난주 이 시간, 우리는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요."라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시끄러운 티브이 소리가 어김없이 엄마, 아빠를 깨우더라도 해맑은 얼굴로 디즈니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는 딸을 어찌 혼내랴. 일주일에 엿새를 일하고 일요일 단 하루라도 늦잠을 자려던 아빠의 계획은 일찌감치 물 건너갔다. "으이구" 소리와 함께 일어난 엄마는 이내 만화에 푹 빠진 딸의 뒷모습을 해사한 미소로 잠시 바라보고 부엌으로 향한다. 아이가 있는 아침 풍경은 이처럼 조금 부산스럽더라도 활기로 가득 찼다.


그때는 몰랐다. 그런 아침이 얼마나 귀한 풍경이었는지. 내가 부모에게 선사한 적당한 어수선함과 생기 가득한 아침 풍경이 우리 둘이 사는 집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말 아침 8시, 오차 없이 창가의 덧창이 자동으로 올라간다. 어둠에 잠겨 있던 아파트에 아침 햇살이 차오른다. 아침을 깨우는 활기찬 아이의 소리 대신, 눈가에 내려앉은 햇살에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아이가 없는 부부의 아침은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우리를 깨우는 누군가가 없으니 당연하다는 듯 돌아누워 잠을 더 청한다. 우리에게는 서두를 이유가 없다. 너무 조용하다 싶으면 곧 8시 30분. 또다시 오차 없이 고양이 사료 배급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다다 고양이들이 지체 없이 달려간다. 이제야 집에 사람 사는, 아니 고양이 사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있었더라면 게으름은 잠시 미뤄두고 삼십여 년 전, 내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나도 얼른 이불을 박차고 나가 영양소 골고루 챙겨 정성 가득 아침을 차렸을 텐데. 일주일에 단 하루 쉬는 날에도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가르쳐 주려고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던 내 아버지처럼 나도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을 텐데. 배가 좀 고파도 이불 속이 좋아 좀 더 뒹굴어도 보고, 외출도 때로는 핸드폰을 통해 세상 구경하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를 위한 책임과 의무가 없는 삶은 게으름으로 점철된다. 나 스스로는 애써 돌보지 않아도 이만큼이나 자랐으니, 당장의 편안만을 추구한 결과라 하겠다. 그래서 평화롭다 못해 정적이 흐르는 아침, 되도록 오래 침대에서 뭉그적대다가 게으른 집사를 견디지 못해 우다다 뛰어다니는 고양이들 덕에 겨우 몸을 일으켜 본다. 고양이 밥은 이미 사료 배급기가 챙겨 주었으니 이제 날 챙길 차례다.


토요일 아침은 집 앞 작은 광장에 장이 선다. 청과상도 열리고, 생선 가게도, 정육점도, 프랑스에서 빠지면 서운한 치즈 가득, 유제품을 실은 상인도 온다. 그 작은 광장에 주말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중에 아이 손을 잡고 나온 부모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것도 사달라, 저것도 사자고 하는 아이에게 절제와 인내를 가르치는 부모들. 장 보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일환일 터였다. 그런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내가 이번 생에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보인다. 우리가 무수히 놓치고 있는 것들을 뒤로 하고, 나는 남편 손을 잡고 빵집으로 향한다.


동전 몇 개 챙겨 가 사 오는 것은 늘 말린 과일을 넣은 빵 몇 조각, 우리 둘의 일주일 치 행복이다. 토요일에는 말린 과일 잔뜩 넣어 칼로리는 높겠지만 달콤함이 배로 더해진 빵을 사 온다. 하루는 건포도 빵, 다른 날은 크랜베리 빵, 또 다른 날은 무화과 빵. 매주 메뉴를 바꾸며 고르는 재미도 챙기고 매주 다른 빵을 먹는 즐거움도 실어 나른다. 그렇게 난 따스한 아이 손을 잡는 대신 빵 몇 조각 담긴 종이봉투를 든다.


평일에는 건강 챙긴다고 먹던 초록빛 싱그러운 스무디 대신, 토요일 아침상만큼은 장에서 사 온 빵으로 채운다. 새콤한 맛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한 산딸기잼과 패션프루트잼도 챙기고, 달콤한 맛을 즐기는 날 위한 블루베리잼과 복숭아잼도 식탁 위에 올린다. 취향껏 골라 먹으라고 버터에 마가린, 악마의 잼 누텔라, 크림치즈, 땅콩버터. 집에 있는 온갖 종류의 단것을 꺼낸다. 아이의 소란이 없는 자리를 단내로 채우는 것처럼, 단맛으로 머릿속 도파민을 깨운다.


사실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닌 일상이다.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집 앞에 열린 장에서 빵을 사 오는 일. 그 대단치 않은 일을 계속해 나가는 이유는 작은 일상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우리 둘의 마음이다. 우리 가족의 규칙이자 전통, 애정 확인법. 나란히 걷는 시간, 마주 보고 나누는 시선,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 그 모든 순간을 쌓아 우리는 함께 하는 행복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는다. 비록 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더라도, 이 드넓은 우주에는 이런 삶도 있을 테니. 이렇게 한없이 소소하기만 한, 평화도 존재할 테니.

이전 08화삶과 죽음의 수평선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