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탄생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는 영원한 불가침의 영역일까? 나는 이미 생명의 탄생을 가로막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생이 내 모든 선택이 모인 집합체라면 생의 마감도 선택의 영역에 들 수 있을지 죽음 앞에 고민한다. 결국 이 모든 질문과 고민은 노후에 관한 문제다. 아이가 없는 삶의 끝은 어떨지 나 자신도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인지 아직 그려 보지도 못한 그 길을 두고 나보다 오히려 주변인들이 더 노심초사다. 우리 둘 중 한 명이 먼저 떠난 세상에서 남은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조차도 답이 없는 고민을 주변인들은 걱정을 가득 이고 짐짓 더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아이 없는 삶을 두고 먼저 부부의 애정도가 시험대에 오르더니 이번에는 노년의 삶이 주인공이다.
우리는 청년 때 만나 함께 중장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흐르는 시간을 타고 노년을 향해 가는 우리 생의 한가운데에 문득 의문이 든다. 과연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게 맞는가?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된 수평선이라면 그 수평선 위를 끊임없이 걸어가는 나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건지, 죽어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나이를 먹는 게, 죽음에 가까워지는 게 두려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흘러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그러면서 성숙해지니 죽음에 가 닿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 삶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난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선택이 온전히 내 몫이 되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죽음을 선택하는 문제에 민감하다. 죽음은 여전히 기다리는 것이지, 스스로 결정하는 행위는 터부시되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내가 종국에 죽음마저 내 손으로 결정할 수 있을지,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
언젠가 네덜란드의 총리 부부가 함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를 보고 우리의 미래도 이렇게 되지 않겠냐며 웃었다. 동시에 둘 다 꽤 비장한 얼굴을 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장 닥친 일이 아니니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어쩌면 우리가 미리 준비하고 결정할 중대한 문제이기도 했다.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직 알 수조차 없으니, 고통을 덜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고통이라는 게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면 어쩌나, 두려워 닿은 생각이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또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다면 과연 살아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건 아이가 없어서 할 수 있는 행복한 고민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이런 결정을 맡기지 않아도 돼서, 짐을 지우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적어도 내 이성이 허락하는 한계에서 나의 삶을 스스로 존엄하게 마감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나를 돌봐 줄 이가 없으니 그냥 죽어버리겠다는 으름장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돌보는 일에 책임과 부담을 느낄 사람이 없어서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왜 나는 피와 살을 나눈 사람조차 없는, 외로움으로 점철될 게 다분한 삶의 끝을 다행으로 여기는가. 아마도 내가 갖고 있는 죄책감 때문이리라.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은 늘 부모 앞에 죄인이다. 한때 나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라 여기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잘살면 된다고 자기 암시를 걸곤 하지만 점점 약해져 가는 부모를 보며 옆에서 보살필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만 차오른다. 옆에 있다고 해서 큰 효도를 하진 못했겠지만, 부모를 모시고 여행 가는 친구, 매번 음식 대접을 하는 사촌, 비싸고 좋은 선물은 물론이거니와 작은 생필품까지 나르며 부모의 일상을 챙기는 형제를 보면 난 안 낳느니만 못한 딸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저며온다. 피와 살을 내주고도 아직도 더 내어줄 것이 없는지 걱정하는 부모한테 내 고민은 비할 바가 못 되겠지만 그래도 못난 자식이 되어 보니 자식에게 괜스레 이런 감정도 물려주기 싫었다. 혹시나 내 존재를 부담으로 느낄 그 어떤 상황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할 그 존재 없이 그저 고해라는 인생을, 번뇌라는 세계를 충분히 겪고 내 이성이 다하는 날, 조용히 떠나고 싶다.
아이야, 너를 세상에 초대하지 않은 건 세상의 그 어떤 고통도 주지 않겠다는 내 가장 큰 욕심이자 부모로서 그 어떤 욕망도 너에게 투사하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나는 그 무엇에도 더 욕심내지 않으며 평안히 이 생을 살아 내기로, 그렇게 죽음에 가 닿기로 결심한다. 네가 내게 준 이 모든 고뇌의 시간 또한 나에게는 선물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자식을 키워 봐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하던데 우리는 반대로, 너는 나에게 오지 않고도 네가 나를 키웠구나. 그 숱한 고민의 밤 동안 나를 살려줘서, 키워줘서, 지켜줘서, 나에게 오지 않아 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