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대신 서로를 키우며
아이 없는 삶은 종종 주변의 걱정을 산다. 부부 사이도 시험대에 더 자주 오르내린다. 좋다가도 나빠지기도 하고, 나쁘다가도 또 한순간 좋아지는 게 부부 관계라지만, 아이라는 애정의 증표가 없는 부부에게 사람들은 좀 더 엄한 잣대를 들이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굳이 남들 눈을 탓할 필요도 없다. 아이가 있었더라면 부부 관계가 풍랑을 맞아 좀 흔들리더라도 아이를 위해 좀 더 끈덕지게 참고 견디는 내공도 있었을 것이다. 육아 전우, 육아 공동체라는 말이 달리 나온 게 아닐 테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가 없는 우리는,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두 사람만이 승선한, 곧 뒤집힐 것 같은 위태로운 배에서 버티고 또 버텨야 한다. 엄마와 아빠로서 이뤄낸 공동의 책임감이 없는 대신,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서로에게 증명해 내야 하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숱하게 싸우며 다시는 안 본다고 다짐한 날들이 많았던가. 결혼 초, 프랑스로 와서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바로 이거였다.
"내 캐리어 어디 있어?"
캐리어 있는 자리야 뻔했지만 스스로 찾으러 가지 않고 일단 그 말부터 내질렀다. 난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반협박성 멘트였다. 유치했고 미성숙했으며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는 싸움의 반복이었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리는 헤어지면 죽을 것같이 뜨겁게 사랑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종도, 국적도, 언어도, 문화도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금성 여자가 화성 남자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고 힘들었다. 어떻게 저런 생각과 반응이 나오는지, 이게 언어의 문제인지, 뇌의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하루가 멀다고 반복되는 싸움. 사실 싸웠다고 하기에는 보통 나 혼자 열 내고 소리를 지르면 남편은 멍하니 자리만 지켰다. 그러다 도저히 견딜 수 없으면 티브이의 명상 채널을 틀어 주고 나가버렸다. 한껏 열불이 올라 시뻘게진 귓가에 울리는 대자연의 소리 앞에 나는 한 마리의 미물이었다. 바닥에 곤두박질친 내 모습에 나 조차도 진절머리가 났다. 대체 이렇게 살 거면 뭐가 급해서 이렇게 빨리 결혼을 한 건지, 왜 이 먼 곳까지 온 건지 사랑에 멀었던 내 두 눈을 찌르고 싶었다. 왜 우리 사랑을 말리는 이 하나 없었냐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텅 빈 방을 채우는 물 소리, 바람 소리 앞에서 답답한 가슴을 내리치다가도 쏟은 물 주워담으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하고, 그가 내민 손을 다시 붙잡기도 했다. 우리 둘 다 고작 이십 대, 아직 어렸지만 벌인 일 수습은 스스로 해야 된다는 걸 우리 둘 다 모르진 않았다. 뭐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머리 맞대고 고심한 끝, 우리의 결론은 우리 둘이 너무 다르다는 거였다. 너무 어렸고, 그래서 혈기 왕성했고, 그래서 그런지 다름을 인정하지도, 양보할 마음도 조금도 없었다. 너무나도 다른 우리 둘을 이해시켜 준 건, 우습게도 MBTI 테스트였다.
유행처럼 번진 테스트로 우리는 서로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다.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MBTI 결과도 자주 바뀌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확신의 T 인간이었고, 지극히 내 기준에서 환장의 P 인간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결과를 읽으며 성향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저렇게 반응할 수도 있구나, 다름이 주는 미학을 MBTI 테스트 하나로 깨닫게 되었다. 수많은 시간 싸워가며 얻은 지혜가 아니라 질문 몇 개에 대한 답이 정의한 인간 유형값 덕분에 평화를 맞이했다는 게 어이없었지만, 어쩌면 삶의 진리는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대단한 사랑 철학보다 당장 우리를 구원해 줄 생활의 지혜가 우리에게는 절실했던 시절이었다.
서로가 다르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나니 그다음은 숱하게 싸워 온 시간과 비교하면 쉬이 흘러갔다. 불만이 극에 달해 다다다 쏘아붙이는 나에게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이성적, 논리적 T 인간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F 인간에게는 공감이 필요하다는 걸 학습했다는 듯이, 그저 이해한다며 영혼 없는 눈으로 두 손을 붙잡고는 "그래, 이해해." 이 말만 되풀이했다. 아니, 대체, 뭘 이해했다는 것인지 또 열불이 나기도 하지만, 이 또한 그의 노력임을 알고 나도 화를 삭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시작도 사실 달라서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달라서 서로에게 끌렸고, 달라서 시너지도 남달랐다. 그래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의견 일치를 끌어 냈을 때 희열도 남달랐다. 아이 없는 삶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의 기준 앞에 우리가 맞고 틀리고는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이 한뜻으로 모은 의견이라는 게 중요했다. 마치 우리는 평생 싸울 한계치를 다 싸워서 해치워 버린 것처럼 더는 싸울 일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아이를 낳아 육아를 시작했더라면 싸울 일이 한참은 더 남았을 텐데 아예 그 싸울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아 버린 걸 수도 있다. 안 봐도 우리의 육아관은 극과 극으로 치달았을 게 뻔하니 아이로 인해 우리 사이가 얼마나 더 극으로 내몰렸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이에게 베풀 사랑마저 이 사람에게 주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그는 나의 남편이자, 영원히 자라지 않을 아이이자, 나를 지탱해 줄 세상이 되었다. 함께 살아온 지 이제 16년, 삶을 바라보는 지향점을 나란히 맞춘 우리 두 사람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속으로 두 손을 맞잡고 걸어가 보기로 한다. 비록 우리가 틀린 답을 내렸다고 해도 너 때문이라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끝에서 우리가 함께 틀렸다고 같이 울고 웃어넘길 테니 그 결과가 썩 외롭지는 않으리라.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시험대에 오르내릴 우리의 애정도와 그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기꺼이 서로를 키워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