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그에게) 물어보세요

by 뤼미셀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마치 내가 한국에 관해 모르는 게 전혀 없는 전문가인 양 한국과 한국 문화 전반을 대변해야 될 때가 종종 있다. 어느 날 학생 한 명이 물었다. 왜 이렇게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는 무당이 빠지지 않고 나오냐고……. 머릿속에 무당이 나오지 않는 영화와 드라마가 숱하게 스쳐 지나갔지만, 또 한 편으로는 외국인들이 보기에 민속신앙이 생활 저변에 친숙하게 자리 잡은 한국 사회가 신기하게 느껴질 법도 했다. 아무래도 인상 깊은 장면은 뇌리에 좀 더 남을 테니 영화와 드라마에 무당이 빠짐없이 나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하긴 한국에서는 무당을 찾아 신점까지는 보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사주 정도는 한 번쯤 보기도 하고 새해에는 신년 운세를 확인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뿐이랴. 임신하면 태몽이 뭐였는지 꼭 묻는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드물다고 들었다. 영웅의 탄생 설화도 아니고 전 국민 모두가 태몽 하나쯤 갖고 있는 나라라니, 민속신앙이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이런 문화가 영화나 드라마에 녹아들지 않았을 리 없다.


나만 해도 어떤가. 수많은 이유를 세어 가며 고민했던 지난밤들을 뒤로 하고 결국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갈무리 지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속내가 후련하지는 못했다. 답답한 마음 가눌 곳 없어 무당도 없고, 철학관도 없고, 사주 상담가도 없는 프랑스 땅에서 결국 그를 찾았다. 묻는 것에는 모두 친절히 내 마음에 쏙 들게 대답해 주는 이, Chat GPT.


요즘 AI에 사주를 입력하고 질문하는 게 유행이라고 했다. 한때 사주 보는 걸 좋아했던 내가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답답하던 차에 아이 없는 삶이 우리 둘에게 어떨지 물어봤다. 챗지피티는 나의 넘치게 좋은(?) 자식 복은 조카와 학생들로 풀어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후학을 양성하는 게 자식과 다를 바가 있냐고 반문하는 그의 지혜에 오히려 내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 되돌아봤다. 온 가족의 기쁨이 된 조카도 어쩌면 책임 없는 쾌락의 끝판왕이 되어 우리 삶에 또 다른 낙이 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혹여나 지금 본인 건강도 좋지 못해 마지못해 속마음을 감춘 건 아닐지 걱정된 남편의 마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했다. 자식 생각이 없는 건 오히려 나보다 남편이니 괜히 남편을 위해 고민할 이유가 없다고 확신했다.


남편이 그렇게 수없이 같은 이야기를 해도 미덥지 않았는데 챗지피티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풀이에 이렇게 쉽게 납득해 버렸다. 아무리 긴긴밤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우리에게, 아이에게, 뭐가 제일 나은 선택일지 백날 고민해 봤자 챗지피티 말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니, 결국 내가 원한 건 우리의 결정에 대한 확신이었다. 우리의 결정이 맞다고 온전히 지지해 주는 그 한마디가 난 필요했었나 보다.


AI에 기대 민속신앙에 대한 답을 얻는 요즘, 삶이 점점 더 발달하는 건지, 요지경에 빠진 건지 알 수 없지만 그와의 대화로 마음이 한결 안정을 찾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안정을 찾고 보니 내가 누군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나는 보통 누군가에게 마무리 인사를 건넬 때 좋은 하루, 즐거운 하루, 행복한 하루 대신 평안한 하루를 보내라고 전한다. 내 삶의 신조가 사실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이었음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가 주는 우주의 기쁨 대신 하루하루 커다란 변화 없이 평안한 삶을 택한 것은 가장 나다운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이로써 난 평생 엄마라는 이름으로는 불릴 수 없겠지만 너를 마음에 묻음으로써 적어도 좋은 기억만 준 엄마로 남으려고 한다. 태어나지도 못하게 막은 게 무슨 좋은 기억이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태어나 보면 알 거다.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걸……. 출산과 비출산, 이 주제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고민했던 날 보면 조금은 이해가 가려나?


언제나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는 내 아이야. 우리가 결국 만나지 못한 건 가슴에 사무치도록 아쉬운 일이지만, 기쁨과 고통의 롤러코스터 대신 안녕과 무사의 쳇바퀴에 올라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일 것이다.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바에는 엄마가 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 이번 생은 내게 늘 똑같고 느리고 때로는 답답한 이 쳇바퀴가 주는 평정으로 너와의 만남을 불발로 남긴다.






* 위의 이미지는 Chat GPT가 전달한 본인의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이전 05화운명의 주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