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우리 둘이 행복하게
고이 접어 띄운 마지막 편지가 과연 아이에게 닿았을까? 그동안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풀어냈다. 정리한 마음 아홉 조각을 이어 붙이니 복잡다단했던 마음이 그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일 년 가까이 머리로, 마음으로 수도 없이 묻던 질문의 답을 찾은 기분이다. 다 쓰고 보니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내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우리 이번 생에는 만나지 말자고 꾹꾹 눌러 담아 쓴 편지는 나를 토닥이고, 보듬으며 내게는, 우리에게는, 이게 맞는 거라고 아우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정리하고 보니 속이 후련해졌다. 눈가에 얼룩덜룩 남은 눈물 자국을 닦아내고 거울 속 날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선택이었다고 되뇌며 말이다.
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이제 끝을 향해간다. 글을 쓰면서도 과연 아이 곁으로 가 닿아 내 마음이 바뀔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영원한 이별로 이번 생은 아이 없이 마감할 것인지 나조차도 궁금했다. 글로 풀어낸 마음은 어느새 정리가 됐는지 이제 입 밖으로 꺼내 보이는 데에도 한결 가벼워졌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덧붙이는 말에도 기꺼이 '저희는 이렇게 아이 없이 살기로 했어요.'라며 아직은 어색하지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이 없는 삶을 기꺼이 선택한 이유를 밝히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설명은 자꾸만 변명처럼 길어지기 때문이다. 또 혹시라도 누군가 이 선택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받아들일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어떻게 지내느냐는 안부 인사에 잘 지낸다는 한마디로 넘기면 되는 평범한 어느 오후. 초대받아 간 지인 집에는 예쁜 딸아이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하얗게 나풀대는 침대 위로 형형색색 수놓은 아이의 그림이 잔뜩 걸려 있었다. 그 그림에는 모두가 웃는 얼굴이다. 항상 내게 좋은 말로 희망과 용기만 건네는 지인이다. 엄마를 닮아 그런지 딸의 그림에도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하다. 엄마에게 행복을 배웠구나, 그래서 흰 도화지에 무지개색 행복을 입혔구나 싶었다. 그 집의 행복과 나의 평안을 굳이 비교할 이유가 없는데도, 문득 형식처럼 묻는 말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론 내린 지난 시간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결심을 깨고 굳이 덧붙였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좀 다사다난했던 것 같아요."
내 말에 큰 눈이 한 번 일렁이더니 질문 대신 지인은 말없이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이를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혼 16년 만에 처음으로 진중하게 고민한 것 같아요."
지긋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내가 뭔가 더 덧붙일 말은 없는지 눈으로만 물어왔다. 그래서 그동안의 이야기, 고양이 애기의 죽음, 남편의 우울, 조카의 탄생, 아이에게 편지로 쓴 내 마음을 담담히 풀어냈다.
"요즘 글을 써요. 무슨 주제로 써야 하는지도 몰라 고민하다가 계속 생각했던 일을 정리할 겸 글로 썼는데, 쓰다 보니 오히려 결심이 서더라고요."
내 말이 끝나길 잠자코 기다리던 지인은 그제야 입을 뗀다.
"혼자서도 행복해야 둘이서도 행복하고, 둘이서도 행복해야 셋이서도 행복한 거야."
남편의 힘든 시기를 아이로 달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아이에게 우리의 행복을 위해 태어나 달라는, 탄생부터 그런 짐을 지울 수는 없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이 세상에 초대해야지, 우리 둘을 위해 아이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우리 둘이 행복한 길을 찾고자 한다. 우리 둘이 온전한 행복을 맞이해, 둘이서도, 혹은 셋이나 넷이 된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행복할 수 있도록.
다행히 글을 쓰며 아이에게 안녕을 고하는 동안 남편은 홀로 우울의 시기를 이겨냈다. 이제 따사로운 햇살이 점점 길어지는 시기가 오니 남편이 걸어가는 그 길도 좀 더 수월해지리라. 나는 그저 옆에서 손을 잡고 어깨도 토닥여 줘야지.
눈물 훔치며 쓴 오늘의 기록으로 우리 둘은 전보다 더 애틋해졌다. 아이를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이 고스란히 우리 둘의 합의였기 때문이다. 고통 없는 세상에서 네가 영원히 행복하길, 아직은 고뇌가 가득한 이 세상은 우리 몫으로 남겨 두고, 너에게 마지막 편지를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