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만나지 않음을 택함으로 너의 무한한 행복을 빈 나의 이야기
과연 이 많은 이야기는 어떻게 나에게 닿았을까? 알고리즘의 신비는 우연일까? 통계일까?
사는 곳, 비슷한 나이, 관심사 등이 합쳐져 내가 클릭하고 잠시 머문 곳의 비슷한 내용이 계속 반복된다. 그렇게 오늘도 스레드(Thread)는 나에게 아이가 주는 무한한 행복과 아이가 없어서 고통받는 이들의 고민과 걱정을 모아 보여준다.
마치 날 여전히 나무라는 듯…
사람들은 오늘도 집단 지성에 묻는다.
"아이는 정말 우주의 기쁨을 안겨주나요?"
"아이를 갖기에 지금도 너무 늦지 않았나요?"
그 뒤에는 또 후기가 줄지어 뜬다. 아이가 없을 때는 몰랐던 삶의 아름다움, 행복…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나와 그를 닮은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그 벅차오름. 왜 나라고 그걸 외면하고 싶었겠는가?
얼마 전, 친구 부부가 오랜만에 파리에 왔다.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있다는 아내의 소설이 공모전에서 상을 받아 수상하러 온 길이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와 작년 여름, 숲속에서 그림 같은 결혼식을 한 부부는 계속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상을 받은 소설도 이러한 본인들의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다고 했다.
전업 작가 앞에서 남편은 갑자기 속도 없이 내가 곧 에세이 챌린지*에 참여한다고 입을 뗐다. 어떤 챌린지냐부터 어떤 글을 쓸 예정이냐 등 나에게 질문이 쏟아졌지만 내가 답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겪은 불행과 절망을 담은 소설로 상까지 받았다는 작가님 앞에서 난생처음으로 글을 쓰는 내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주제로 써 보려고 한다고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혼 16년 차.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내게 자연스럽게 묻지만, 나는 그들에게 왜 아이를 낳았느냐고, 혹은 왜 아이를 낳고 싶냐고 물을 수 없다. 당연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내가 던지는 이상한 질문은 분명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 테니 난 말을 삼킨다.
프랑스에 온 지 벌써 15년.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두 발을 이 땅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발이 땅에 닿지 않아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다. 나에 대한 불안은 결국 내가 안고 있는 이 수많은 불안을 아이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삶은 고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시 한번 이 삶을 살아내야 한다면 난 기꺼이 다시 태어나는 걸 택할 수 있을까?
이미 태어난 나는 선택권이 없었지만 내가 가장 사랑할 아이에게 나의 행복을 위해 태어나 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과연 이 불안을 잠재우고 그래도 삶은 한 번 살아볼 만하다고 아이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아이의 나고 자람을 선택할 수 있는 나는 결국 아이를 위해 내가 제일 많이 사랑할 너와 영원히 만나지 않음을 택했다. 아이 대신 나만 생각한다는 이기적이라는 비난도, 내 안의 불안을 잠재우려면 더욱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는 충고도 피하지 못하고 모두 감내하기로 했다.
이제 12월이다. 2025년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유독 바람 같은 해였고, 나는 이제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다. 분명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삶이 명쾌해질 줄 알았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 불혹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전히 나는 뭐가 맞는 건지, 뭐가 틀린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헷갈린다.
물론 이 글을 쓰면서도 과연 내 결정이 옳은 것인지 자문한다. 이 땅에 태어나 사랑을 주고받는 행복을 느껴 보려는 너의 길을 내가 막은 것은 아닐지… 15년 동안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이 질문이 유독 올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아마도 생물학적으로 선택권이 점점 줄어들 내게 보내는 우주의 마지막 신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원해도 가능하지 않을 테니 더 늦기 전에 네가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후회 없이 고민하고 결정해 보라는 너의 응원이리라 믿어 본다.
그래서 너에게 닿을 수 없는 편지를 쓴다.
이 편지는 어쩌면 나의 결심을 토닥이는 나에 대한 위로이자 나의 불안을 잠재우는 노래일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해 마지않을 너에게,
태어나지 않음으로써 삶의 고통 대신 영원의 행복을 누릴 너에게,
내 온 마음을 담아 내 선택이 나보다는 너를 위한 것이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아로새겨 보내려 한다.
내 결정에, 우리의 결심에 네가 동의하기를 바라며…….
*소설가 김서령님이 운영하는 폴앤니나 에세이 챌린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한 달 동안 자유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