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힐까?

고양이 "애기"를 떠나보내며...

by 뤼미셀

15년간 잠잠하던 내 마음에 왜 갑자기 파동이 울릴까? 이 잔잔한 호수에 누가 돌을 던졌을까? 올해 유독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 건 몇 가지 계기가 있다.


작년 이맘쯤, 우리의 고양이, "애기"는 결국 우리 곁을 떠나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만으로 꼬박 16년을 채우고 3개월을 우리 곁에 더 머무르다가 영원히 잠들었다.


어학연수로 프랑스에 간 그 해, 난 지금의 남편도 만나고, 우리의 애기도 만났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식당 창고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미 고양이가 보기에도 새끼 중 한 마리는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는지 젖도 물리지 않고, 다른 새끼들과 함께 슬그머니 보금자리도 옮겨버렸다. 아직 눈도 못 뜨고 버림받은 그 아이는 내 손바닥보다도 작았다. 그렇게 그 아이를 데려왔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니 이름을 물었다. 아직 이름도 못 지어서 당황해하다가 그냥 애기라고 했다. "애키? EKI?"라고 되물어서 그냥 그렇다고 했다. 맞춤법도 고려하지 못한 채 입말 그대로 그렇게, 눈도 못 뜬 고양이는 우리 둘의 아기가 되었다.


병원에서는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어미 젖도 못 얻어먹은 데다가 전체적으로 너무 쇠약한 터였다. 일단은 해 보는 데까지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집에 데려왔다. 애기와 함께 보낸 처음 두 달은 정말 아기를 키우는 기분이었다. 집게손가락만 한 우유병에 고양이 분유를 타서 밥을 먹이고 배 마사지를 해서 대소변도 가리게 했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 친구들과 파리 나들이를 다녀오자고 기차표며 숙소까지 다 예약했는데 도저히 애기를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결국 갑자기 신생아 육아하는 엄마가 된 것처럼 여행 가는 친구들에게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난 고양이와 남았다. 친구들이 떠나고 그렇게 육아(育兒)가 아닌 육묘(育猫)를 하면서 산후 우울증이란 이런 걸까 하는 되바라진 생각도 했다. 그래도 그때는 고양이랑 나만 세상에서 고립되어 가는 것 같았다. 털이 다 고르게 나지도 않은 데다가 눈도 못 뜬 이 작은 생명체가 귀엽다는 생각이 미처 들지도 못했는데, 그에게 모성을 느낄 리 만무했다. 만 22살의 난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 애기는 병원에서의 우려와는 달리 기적적으로 기력을 회복했다. 처음 눈을 뜨고 날 봤을 때가 되어서야 난 비로소 딸이 생긴 것 같았다. 애기는 어땠을까? 날 정말 엄마로 여겼을까?


그렇게 몇 개월을 함께 하다가 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애기는 자연스럽게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에게 맡겨졌다. 눈물의 이별이었고, 꼭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너무나 어렸던 우리 둘이 과연 무슨 미래를 함께 그릴 수 있었을까? 남편은 내가 떠난 자리를 애기로 채우고 애기에게서 위로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때 너무 어렸고, 그랬기 때문에 무모하고 무지했다. 그래도 젊음의 패기를 빙자해 그 무모함과 무지함으로 우리는 결혼까지 했고, 난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애기를 만났다. 눈도 못 뜨던 시절, 우유병으로 밥을 먹이고 대소변도 받아냈는데 2년 만에 만난 애기는 완전히 남편의 딸이 되어 있었다. 남편 품에 안겨 자다가도 애기가 우리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면 남편 팔베개를 애기한테 양보해야 했다. 그들의 애정에 가끔 질투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없는 기간 동안 서로에게 의지해 버텨준 둘에게 고마워하며 그렇게 우리는 꼭짓점을 연결해 마침내 보기 딱 좋은 삼각형이 된 것처럼 세 식구가 되었다. (이후에 애기에게 동생 고양이, "월프"가 생겼지만 애기는 월프와 끝내 데면데면했다.)


그런데 왜 행복은 영원하지 못할까? 애기가 우리만큼 오래 살아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작은 생명체의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것인지… 원망할 새도 없이 우리는 조금씩 그 순간을 준비해 갔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고 서로를 달래며 부디 이 아이가 고통 없이 가기를 숨죽여 기도했다. 그리고 우리 기도를 들어주듯 남아 있는 모든 숨이 다할 때까지 우리 곁에 머물다 그렇게 조용히 떠났다.


이별은 준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이 고장 날 수도 있다는 걸 남편을 보고 깨달았다. 매사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는 나와는 달리 지극히 이성적인 남편이 망가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속으로 삭히는 게 이렇게나 위험하다는 걸 남편을 보고 알아차렸다. 머리로 준비한 이별은 뇌에 생채기를 남겼다. 우울증이었다.


사실 애기가 떠나고 우리는 우리보다 남은 월프가 더 걱정됐다. 애기를 추모할 새도 없이 바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우유처럼 하얘서 "우유"라 이름 붙였다. 다행히 월프와 우유는 둘도 없는 형제 미를 뽐내며 서로 물고 빨고 잘 지낸다. 우리 집에 오자마자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았던 우유를 돌보느라 애기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다 괜찮을 줄 알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지나치게 많이 자기 전까지…


그냥 좀 피곤한 건 줄 알았는데, 아픈 곳이 여기저기 늘었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은 여러 검사를 제안하고 또 다른 의사를 소개해 주기 바빴다. 결국 마지막 종착역은 정신과였다. 애기는 이름처럼 우리에게 영원한 아기이자 자식이었다. 아무리 미리 준비했다고 해도 내가 잠시 떠난 그 시간 동안 버티게 해 준 애기는 남편에게 자식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대로, 지켜보는 사람은 지켜보는 사람대로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 아이가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랑은 과연 다른 사랑으로 잊힐까?

우리는 과연 아이를 잃고 텅 비어 버린 마음을 다른 사랑으로 채울 수 있을까?


이미 우리에겐 남은 고양이가 두 마리 더 있지만 언젠가 이 아이들도 애기처럼 우리보다 먼저 떠날 것이다. 또 이 고통을, 이 사람이 또다시 무너지는 걸 볼 자신이 없다. 애기를 떠나보낸 슬픔을 과연 우리는 아이로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게 정말 아이일까? 이 의문은 우리의 15년 결혼 생활에 처음으로 파동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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