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난 스물둘, 어학연수생이었고, 남편은 스무 살 대학생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20년 후 뭘 하며 살고 있을까?"라며 각자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 있었다. 커리어에만 열중해서 계획을 말하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아이가 두 명 정도 있을 것 같다고 하며 아내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라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고작 스무 살짜리 입에서 "애는 둘, 결혼은 글쎄?"라는 말이 나온다고?라고 속으로 되뇌며 그냥 이 친구가 특이한 건지, 프랑스 사람들의 사고가 저런 건지… 생각하다 머릿속에서 까맣게 그날의 기억을 지웠다.
결혼해서는 당장 공부도 끝내지 못한 학생 신분에, 심지어 파리에 집 구할 능력도 없어 학교까지 기차를 타고 통학해야 하는 시할머니 댁에 얹혀살게 되었다. 그 와중에 시아버지까지 한동안 할머니 댁에 머물러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3대가 함께 사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프랑스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운데 '이 무슨 아침마당에서도 나오기 힘든 사연이 내 현실이 되다니!'를 외치며 아이 이야기는 할 겨를도, 아니 정신 따위 없었다.
당연히 논외가 돼 버린 이야기가 살면서 언젠가 한 번 거론되었다. "그래도 아이 한 명은 있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남편 말에 너무나도 단호하게 No를 외쳤다. 그럼 입양이라도 생각해 보자는 말에 이 정도로 아이가 중요한 건가… 생각하다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흐르며 남편은 자연스럽게 내 거절의 의사를 따랐다. 자신만의 생각을 거쳐 우리에게는 아이가 없는 삶이 더 낫겠다고 본인도 판단한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긴 논의 없이 딩크족을 가장한 싱크족이 되어 더 이상 자녀 계획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은 채 살아갔다.
시아버지는 아들이나 딸에게 가끔 한두 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묻긴 했지만, 며느리인 나에게는 따로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다. '역시나 프랑스 시댁은 쿨해서 좋다'를 속으로 외쳤다. 딱 한 번, 엄마가 내게 아이 계획은 없냐고 물었지만, 딱 잘라 없다고 하는 단호박 같은 딸에게 엄마는 더는 묻지 않았다. 물론 요즘 어른들 사이에서는 손주 사진 자랑하며 보여주는 게 낙이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황혼 육아 스트레스 없이, 원할 때 언제든 여행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자유로운 노후냐며 요란스레 엄마 아빠의 은퇴 생활을 응원했다. 손주 안겨줄 계획 없으니 김칫국 마시지 말라는 딸의 무언의 메시지를 눈치 빠른 엄마가 모를 리 없었다.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지인들조차 내게 자녀 계획을 묻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요즘 워낙 난임이 많아 조심스럽기도 했겠지만 이른 결혼이었음에도 내가 뭔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미지여서 그랬는지, 말해도 못 알아먹을 쇠고집으로 보였는지, 내 또래거나 나보다 늦게 결혼했다고 해도 한두 번쯤은 시달렸다는 그 압박의 시간이 내게는 전혀 없었다. 자녀 계획 스트레스는 정말 다른 사람 이야기였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걸까? 그 질문으로 생각해 볼 기회조차 난 갖지 못했던 걸까?
아직 남편이 절망의 심연에 빠지기 전, 아니 조금씩 치미는 우울의 상태를 눈치채지도 못했을 때, 집안에 경사가 있었다. 첫 조카의 탄생. 남편의 여동생이 금발의 파란 눈, 다분히 클리셰지만 정말 인형 같은 아이를 낳았다. 조카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이 빛났다. 한번 안아 보겠냐는 말에는 한사코 거절했다. 너무 작아 부서질 것 같아 무섭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아기를 바라보는 눈에 사랑이 가득 담겼다. 처음이었다. 저런 눈빛…
남편은 그동안 늘 아이들과 거리를 유지했다. 아이들도 굳이 남편에게는 다가오지 않았다. 자기에게 관심 없는 어른에게 먼저 다가오는 아이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 조카에 대한 저런 반응을 감히 기대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몰랐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우리가 잃어버린 15년이 생각났다. 혹시나 내가 막았을까? 저 사람의 기대, 기쁨, 삶의 행복을?
시아버지는 말해 무엇하랴. 은근히 기대했던 손주가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았다. 인형같이 생긴 그 아이는 아버님을 똑 닮았다. 아이를 안은 시아버지의 눈가가 반달처럼 휘었다. 강아지, 고양이 손주만 한가득이었는데 아이가 가져온 집안의 밝은 기운은 비할 게 못 되었다. 나와 남편이 주지 못할 인생의 큰 기쁨 아니겠는가? 그런데 돌연 시아버지가 나에게 화살을 돌렸다. 너네는 언제 아이를 낳겠느냐고… 15년 동안 민감한 질문은 삼가던 나의 쿨한 시아버지는 대체 어디 가고 한국 드라마 속 꼬장꼬장 시아버지가 나타난 것인가? 웃으며 계획이 없다는 내 대답에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는 시아버지. 아니, 그럼 내가 한창 젊었을 때는 가만히 있다 15년 만에 대체 왜 이러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아버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셨잖아요!"
입 끝까지 차오른 말을 내뱉지 못하고 괜히 집에 와서 씩씩댔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낳은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은 시아버지 때문에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단숨에 돌아섰다. 효도하려고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남편도 아니고, 남편의 아버지 때문에 아이를 낳는다는 게 말이 될 성싶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한번 비출산의 의지를 다졌다. 조카를 바라보던 남편의 눈빛이, 아이를 한 번 웃겨보겠다고 놀린 어색한 손짓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아닐 거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얘도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를 되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