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대신 불안을 낳았네요

by 뤼미셀

고양이의 죽음, 조카의 탄생, 생물학적 한계치 임박……. 불안은 내 확신을 갉아먹는다. 분명 이렇게 선택을 한 이유가 있었고,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내 확신은 불과 바람 앞 촛불 같았다. 바람이 이는 방향에 한없이 흔들렸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국에서 명절 때 듣는 질문은 한결같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공부 잘하느냐부터 수능이 끝나면 입시, 대학 졸업 후에는 취업, 취업 후에는 결혼, 결혼 후에는 자녀 계획, 아이 하나 낳았다고 끝이랴? 둘째가 곧바로 따라붙는단다. 그 이후에는 다시 반복이다. 아이의 성적, 입시, 취업, 결혼, 자녀……. 이 쳇바퀴에 올라탈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남들과 같은 기준으로 살 이유가 없다며 어쩌면 난 그 기준들을 조금은 업신여겼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오만함에 내가 당했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오히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세상 기준 앞에 당당히 맞서고자 한 나의 지난 15년이 고작 1년 남짓의 불안으로 스러져간다.


그동안 나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혹시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받는 것은 아닐까, 불안이 또 명치를 스쳤다. 남편은 이미 내게 빚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던 내가 사랑 하나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프랑스에 왔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혹시나 원하는 걸 목청 끝까지 삼키게 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정말 이 주제에 대해 확실하게 말하고 넘어갔던가? 기억이 흐릿했다.

남편과의 대화 대신에 나는 먼저 지인들과의 수다를 택했다. 아직 내 마음도 정하지 않은 채 남편과 이 주제를 논할 수는 없었다. 나의 불안으로 남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았다. 난 불안한 거였지, 아이를 낳고 싶다거나 아이와 함께 살고 싶다고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않았다. 또 다른 이유로 아이에게 선사할 이 세상이 나는 불안했다. 불안한 삶을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불안에 해결책은 없었다. 마치 평생 해소되지 않을 숙제처럼……. 다만 언제나 내가 최우선인 이 사람의 인생에 나도 딱 한 번쯤은 나보다 이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오지는 않을까 싶었다.


혹자는 사람의 행동거지를 보면 평소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행동은 생각을 담는다고 했던가. 나의 초조함은 자꾸 질문을 낳았다. 지인들을 만나면 으레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어떤지 물었다. 아이를 낳고서야 가족은 완성될 수 있는 건지 물었다. 내 끝없는 질문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눈치챈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위로했다. 내가 원한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지만, 이런 나 때문에 남편이 불행할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물론 아직도 나는 그에게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묻지 않았다. 묻지도 않고 나 혼자 피워낸 망상은 계속 불안을 낳았고, 우리가 만든 세계에 대한 확신을 좀먹었다.


지인은 이야기를 꺼냈다. 오래전 아이를 낳으려고 노력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그 가시밭 같은 고난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불가능하다는 소식을 마주한 그날의 암담함을 담담히 풀어냈다. 창자가 끊길 것 같은 자신의 절망 앞에 남편이 건넨 한마디, 이렇게 우리 둘도 괜찮다는 그 말을 위로 삼아 아이를 잊었노라고……. 그로부터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요즘, 지인 남편은 식집사로 제2의 인생을 맞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거실에 자리한 수많은 화초의 잎을 하나하나 닦아 주며 연신 미소를 띤다고 했다. 마치 아이를 자랑하듯 오늘은 여기에 새순이 돋았고, 여기에 꽃망울이 폈다고 사진을 찍어 올리며 아내에게도 자랑했다. 순간 아이가 있었다면, 아이를 키웠더라면 저런 얼굴이었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지인은 남편에게 사과했다. 나 때문에 이런 인생의 기쁨을 못 누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를 딱해하느라 당신의 불행을 돌아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의 얼굴은 멍해졌고, 이내 오열했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오열에 나도 마음으로 울었다. 난 아이를 낳지 않아 불안하기도 했지만, 또 불안해서 아이를 낳지 못하기도 했다. 아이의 부재로 남편이 불행해진 건 아닐지 불안했고, 삶에 대한 확신 없이 마냥 불안한 엄마 밑에서 클 아이가 가여워 우리의 만남을 영영 막았다. 난 여전히 뭐가 정답인지 알지 못하고 내내 불안한 채, 아이 대신 불안만 낳는 삶을 영위할 뿐이었다. 이제 더 미룰 수 없다. 그동안 남편과 대화하지 않았던 것 또한 불안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남편과 이 문제를 매듭짓고 나의 불안을 종식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청사진과 우리가 가장 사랑해 마지 못할 그 존재의 미래에 관해 확신의 도장을 찍을 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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