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_어쩌다 덕업일치] 12 교정지 발송 미션
“아아악! 기사니이임~!! 잠시만요!! 저 테이프만 붙이면 돼요!!!”
미션에 실패할 뻔했다. 택배 기사님 방문 전까지 교정지를 포장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빨리빨리'를 되뇌며 초조해진다.
학기 중에는 늘 택배 마감 시간에 쫓긴다. 제작 일정이 무척 빠듯하기 때문이다. 항상 바쁜 교수님들이 주말에 교정을 볼 수 있도록 교정지 보내는 요일을 계산한다. 만약 오늘 보낼 교정지를 다음 날 보낸다면 일정이 예상보다 많이 틀어져 곤란할 수 있다. 그래서 택배 마감 시간을 놓치면 서울은 퀵서비스로, 지방은 KTX나 고속버스 특송으로 교정지를 발송한 적도 많다. 하지만, 이 방법은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택배 발송은 아주 중요한 미션이다.
“교수님! 며칠 전에 보내드린 교정지는 잘 받으셨어요?”
A.
“아니, 내가 지난주에 학교에 없어서 오늘 봤어요.”
“(주말이 지나버림) 아…(눈물… 눈물…) 그러셨구나... 교수님, 바쁘실 텐데 일정 괜찮으세요?”
B.
“못 받았는데요?”
“네에? 이상하다. 택배는 배송 완료가 뜨는데요.(ㅠㅠ)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기사님, 안녕하세요. 혹시 지난주 목요일에 세모 대학교 네모과 가나다 교수님 방으로 보낸 물건 기억하시나요? 완료처리 되어 있는데 못 받았다고 하셔서요.”
(제발 탈 없이 교정지를 찾을 수 있기를… 눈물 눈물…. 이런 경우, 학과 사무실에 한꺼번에 두는 경우가 많았지만, 실제로 분실하기도 한다.)
만약 교정지를 분실하면 다시 보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물론 다시 보낸다. 하지만, 교정지는 단순히 텍스트를 인쇄한 종이가 아니다. 원고를 읽으며 저자에게 문의할 내용이나 다른 저자와 통일할 내용 등 논의가 필요한 여러 사항을 기록한다. 더욱이 1교 이상 진행됐다면 저자가 교정을 본 원본 교정지도 같이 보내므로 분실은 상상하기도 싫다. 그래서 모든 교정지를 스캔하는 습관이 생겼다. 스캐너가 하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몰라도 모든 책의 교정지를 매번 그리하는 건 업무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교정지 때문에 생길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하려고, 발송 안내 메일에 원본 PDF를 함께 첨부한다. 일정이 급할 땐 PDF로 보내주셔도 된다고 적극적으로 말씀드린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여기 땡땡 출판사인데요. 혹시 오늘은 몇 시쯤 방문하실 예정이세요?!”
택배 기사님에게 질척거리지 않으려고 야근도 하고 출근도 일찍 하지만 왜 계획대로 안 되는 날이 더 많은 건지. 이런저런 방해로 오전 시간을 날리면 간단한 요기 거리를 사 와서 점심시간에 일한다. 이렇게 했는데도 결국 기사님을 마주한다면 별수 없다.
“기사님!!!! 죄송해요!!! 잠시만요!!! 빨리 포장할게요!!ㅠㅠ 진짜 진짜 감사합니다!”
첫째, 사과드리고 둘째, 부탁드리는 수밖에.
택배 기사님!
옛날이나 지금이나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