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_어쩌다 덕업일치] 11 새 학기 책 만들기
“네~ 교수님~ 요즘 너무 바쁘시죠~!”
책을 한 권씩 만들수록 ‘교수님’이라는 말이 입에 찰지게 붙는다. 어느새 메신저 친구 목록에는 ㅇㅇㅇ 교수님이 늘어간다. 내가 만든 책의 저자는 대부분 교수와 의사였다. 보통 저자들은 학교에서 강의하거나 병원에서 진료를 보거나, 혹은 둘 다였다.
전문적인 학술도서나 대학교재의 저자는 한 권당 한 명인 경우도 있지만, 여러 명일 때가 많다. 특히 학회에서 발행하는 대표 도서나 교과서라면 십 수명을 넘어 수십 명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작업한 책 중에 저자가 50명인 경우도 있었다.
책을 만드는 동안 저자와는 평균 3회 정도 교정지를 주고받는다. 매번 교정지를 보냈다고, 문의드릴 내용이 있다고, 마감일이 지났다고, 보내주신 건 잘 받았다고 연락한다. 이렇게 잦은 연락이 필요하지만, 저자들은 기본적으로 너무 바쁘다. 강의와 진료 사이에 전화 통화 타이밍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메시지를 남겨도 언제 답을 받을지 모르니 초조하다. 며칠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기면 비상사태다. 그러니 오는 전화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게 된 계기였을지도! (미리 일정을 알려주시는 분들도 많다)
책은 학과나 진료과의 교과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방학 시즌에 새 학기와 새 학년에 공부할 책 마무리가 한창이다. (그때 시작하는 책도 있는데, 그만큼 촉박하다) 반드시 학기 시작 전에 출간해야 하니 6~8월, 12~2월은 업무 강도가 매우 높다. 야근은 기본이고, 철야도 종종 하며, 주말 출근도 빈번하다. 한 달 내내 하루도 못 쉬고 회사에 나간 적도 꽤 있었다. 종일 앉아서 일만 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니 학기를 한 번 치르고 나면 몸이 거덜 난다.
이런 상황에서 편집회의가 겹치면 총체적 난국이다. 진행 상황과 내용 이슈를 체크해서 아름다운 회의자료를 만들어야 하니까. 교정지 볼 시간도 없는데 회의자료라니 가혹한 현실이다. 주말에는 피땀 눈물이 밴 자료를 들고 회의 장소로 향한다. 설사 그게 지방이더라도 말이다. 저자들이 모두 같은 지역에 거주하지 않고, 시간도 여유롭지 않아 주말 회의가 많은 편이다. 같은 날 다른 책 회의와 겹치면 영업자와 편집자가 나누어 가기도 한다. 때로는 편집자가 참여하지 않는 회의도 있다. 이는 상황마다 회사마다 유동적이다.
편집회의에서는 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출간 계획을 세우거나, 원고와 교정지를 취합했을 때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는 등 실질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회의를 자주 할 수 없으니 최대한 핵심 내용이 많이 언급되도록 질문하면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 한 가지 문제로 오랫동안 이야기하면 회의 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으니 완급 조절이 필수이다.
저자가 많을수록 논의 내용도 많아질 수 있다. 작업자 입장에서는 그런 내용이 한 번에 정리되는 편집회의를 거치면 진행이 더 수월하다. 하지만, 회의 준비부터 종료 후 회의록 정리까지 소요되는 시간만큼 실제 교정지를 볼 시간이 줄어드니 애가 탄다. 회의 중에도 내용을 놓치지 않으면서 식사나 다과 등 챙길 부분이 많다. 이러니 편집회의라는 말만 들어도 초긴장 상태가 된다.
"아! 정말 너무 힘들다! 이번 학기까지만 하고 그만둔다!"
이번 학기만이라고 해놓고 대체 몇 학기를 보내는지, 학기만 끝나면 살 것 같으니 또 잊고 지내면 어느덧 다시 새 학기다. 그래도 이렇게 고생해서 몇 권씩 만들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뿌듯하다. 그래서 일과 손절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보람을 먹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