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루미책방

내가 살아가는 이유

『담론』을 읽고

by 루미썬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난 사람과 겪은 일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과 일들로부터 격리된 나만의 정체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관계다'를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p.415




대학생 때였나 보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구매했는데 짧은 글이었음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국, 한번 훑어보고 말았다. 그 후로 다른 책이 나와도 어렵다는 생각에 관심이 없었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 그의 마지막 강의를 담은 『담론』(신영복, 돌베개)을 읽어 보니 내가 지금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담론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이라는 두 개의 파트로 구성하여 이야기한다. 결국 1부는 고전 읽기라는 셈. 중간에 앞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관계를 논한다는데 직접적으로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왜 고전을 읽는 건지 의아했다.


시를 통해 우리의 인식틀을 반성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아가선조들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지혜를 발견한다. 내가 책을 읽으며 할 수 있는 건 감탄하는 것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깨우쳤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의 생각에 갇혀서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다른 것들을 판단합니다. 한 개인이 갇혀 있는 문맥 그리고 한 사회가 갇혀 있는 문맥을 깨닫는다는 것은 어쩌면 당대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시대를 역사적으로 바라보면 그 시대가 갇혀 있던 문맥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당대 사회를 성찰한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을 성찰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불구의 산모 여지인의 몸짓은 그 통절함이 과연 자기 성찰의 정점입니다. 우리의 『장자』 독법이 바로 이러한 성찰이어야 할 것입니다.
p.153


사실과 진실, 무와 유, 생명과 기계, 우엘바와 바라나시, 한명회와 황희 정승 등 다양한 개념을 '대비'하며 설명한다. 이 덕에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양쪽을 나누어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이는 결정론적 사고이니 '보완' 관계로 읽어야 한다는 당부가 인상 깊다.


사물이나 사건은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망 속에 놓일 때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대비는 그중에서도 가장 간단한 관계망 속에 놓는 것입니다.
p.194

세상에는 원인이기만 하고 결과가 아닌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결과이기만 하고 원인이 아닌 것 역시 없습니다.
p.195



성장하는 추억


대학생 때 전공과목 과제 중 인생 포트폴리오 만들기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 그리고 꿈을 이룬 미래의 모습까지 담아 제출했다. 그런데 돌아온 피드백은 미래를 계획해 보라는 이야기였다. 내 방식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아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며, 과거의 현재에 대한 위력은 현재가 재구성하는 과거의 의미에 의하여 제한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구나 추억은 옛 친구의 변한 얼굴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추억의 생환이란 사실을 훨씬 나중에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생각하면 우리가 영위하는 하루하루의 삶 역시 명멸하는 추억의 미로 속으로 묻혀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추억에 연연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추억은 화석 같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단히 성장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언제나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 책 역시 추억을 새롭게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p.219


오랜 시간 후에 포트폴리오를 들춰 보니 60%가 과거, 30%가 현재, 미래는 10%밖에 안 되는 비중이었다. 나는 과거에 대한 반성은 잘하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것에 약하다. 그걸 콕 집은 교수님의 피드백이라 지금까지도 잊지 않았다. '너는 과거만 생각하는 게 잘못되었어.'라고 꾸짖는 것 같아 미래를 생각하려고 애썼고, 과거를 돌아볼때는 바르지 못한 길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이 가벼워졌다. 과거를 돌이켜도 항상 당시의 감정을 느끼고 감상에 젖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다른 감정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리고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기 위해 반성한다. 과거는 정체된 것이 아니며 지금, 이 순간도 과거로 남기 위해 성장하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초등학교를 마치고 전학했고 입시를 거치며 중학교 친구들 모두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고등학교 친구들하고만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작은 사회라고 부르는 대학에서는 선배에게 배신도 당하고 친구와 절교도 해보았으며, 직장동료 언니들과는 너 없이는 못 산다며 호형호제하다가도 퇴사와 결혼을 끝으로 허무하게 단절되는 인간관계를 경험하며 슬퍼했던 날이 많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문제가 힘들지라도, 일이 재미없어 불평하지만, 사람들이 좋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걸 보면 과연 사람 없는 세상에서 혼자 살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자기 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 사람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자기 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입니다. 같은 키의 벼 포기가 그렇고 어깨동무하고 있는 잔디가 그렇습니다.
p.239


인간관계만큼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 뼈를 때린다. 옆에 있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내 관계가 지금 힘들다면 주변 사람들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좋은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신문지 크기의 햇볕이 주는 따스함 때문에 죽지 않고 공부하고 깨달으며 살았다고 한다. 나는 절망의 늪인 2018년을 보내면서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뛰쳐나갔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건 수긍하지만 왜 살려고 하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기다려주고, 무엇이 힘든지를 들어주었으며, 괜찮다는 말로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 덕분에 살기 위해 애썼다.


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사는지를 물을 때 전자를 택했다. 살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사는지를 물으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각자의 세계가 만나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는 한 뼘씩 성장한다.





Photo by Shane Rounceon Unsplash



이 글에 책을 다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다못해 요약도 어려운 책이다. 만남이 없는 얼굴 없는 인간관계, 변화사관, 간디의 '나라를 망치는 7가지 사회악', 자본축적과 소외, 여행 등 좋은 부분이 많았고 특히 사일이와 공일이는 챕터 전체가 울림이었다.


강의 순서도 처음엔 단순한 이론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엔 인간 대 인간을 조명하며 삶을 통찰할 기회를 준다. 큰 맥락은 관계를 논하지만, 그 전에 내 삶을 되새기고 정체성을 찾도록 과제를 던지며 길을 안내해주었다.


24장 사람의 얼굴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문단을 읽으니 쌓였던 무언가가 터지듯 감정이 복받쳤다. 마지막 장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을 읽었을 때는 다 읽었다는 안도감보다는 이 강의를 현장에서 직접 들었다면 나는 한 학기 동안 어떻게 변화했을지를 상상하고 있었다. 아쉬움일 것이다.


깊이의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건 책이 아니라는 생각과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를 울림은 독서 후 처음 느낀 기분이다. 3개월 후에 이 책을 다시 읽고 싶고, 신영복 선생님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2019년 마지막 책이자 2020년의 첫 책으로 읽은 것이 신의 한 수일 정도로 의미 있게 기억할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훑어보다 며칠 전 쓴 글이 생각났다. 비록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람임을 잊으면 안 된다. 사람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비극이 미가 된다는 것은 비극이야말로 우리를 통절하게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비극에 공감하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인간을, 세상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p.253


20191231_003156.png 때로는 잃어야 하는 이유 https://brunch.co.kr/@lumissun/66





생각하면 우리가 생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p.418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하단서명.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