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자가 있는데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까요

역할·책임·권한이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생기는 일.

by 경영 컨설턴트 Tim

조직 안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건 제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도 하려 했는데 권한이 없었습니다." "누가 최종 결정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듣는 리더는 답답합니다. 팀원들의 책임감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설계의 문제입니다.


조직이 작을 때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납니다

조직이 작을 때는 대표의 감각, 관계, 즉흥적인 조율로 어느 정도 굴러갑니다. 누가 무엇을 할지는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고, 모르면 옆 사람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 방식이 통합니다.


그런데 인원이 늘어나고 기능이 나뉘기 시작하면 달라집니다. 암묵적으로 통하던 것들이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비슷한 신호들이 반복됩니다.


누가 최종 책임자인지 늘 애매합니다. 역할은 있는데 서로 계속 침범하거나 미룹니다. 책임은 부여됐는데 권한이 없어 실행이 안 됩니다. 권한은 문서상 있는데 실제로는 대표 승인 없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 분석보다 사람 탓, 태도 탓으로 흐릅니다.


이것은 팀원들이 나태해서가 아닙니다. 조직의 운영 언어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왜 존재하며, 무엇을 끝까지 맡고, 어디까지 결정하는가. 이것이 명확하지 않은 조직은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같은 자리에서 반복해서 막힙니다.


역할은 업무 목록이 아닙니다

많은 조직이 역할을 정의할 때 업무 목록을 씁니다. 주간 보고서 작성, 거래처 관리, 재고 확인. 이것은 역할이 아닙니다. 할 일의 나열입니다.


역할의 본질은 그 자리가 조직 안에서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세 층으로 이해하면 명확해집니다.

첫 번째 층은 존재 이유입니다. 이 역할은 왜 조직 안에 있어야 하는가. 반드시 조직의 목적과 목표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층은 핵심 기여 가치입니다. 이 역할은 조직 안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가치 창출이 없으면 역할은 형식에 머뭅니다. 세 번째 층은 기대 결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가. 기대 결과가 없으면 역할은 모호해집니다.


역할이 이 세 층으로 정의됐을 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책임은 태도가 아니라 약속입니다

책임을 이야기할 때 흔히 주인의식, 적극성, 성실함 같은 태도로 설명합니다. 물론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책임이 건강하게 발현될 때 나타나는 모습이지, 책임 그 자체는 아닙니다.


책임의 본질은 의무이자 약속입니다. 그 역할의 기대 결과에 대해 끝까지 자기 이름으로 받는 것입니다.


책임이 있는 사람은 다섯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과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숨지 않아야 합니다. 필요한 자원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패를 재발 방지와 학습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책임은 결과에 대한 수용, 설명, 그리고 개선 의무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있어야 진짜 책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요구한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책임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권한 없는 책임은 희생양을 만들 뿐입니다

여기서 가장 자주 발생하는 설계 오류가 있습니다. 책임은 주었는데 권한은 주지 않는 것입니다.


팀장에게 성과에 대한 책임을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예산 사용은 대표 승인이 필요합니다. 인력 배치도 대표가 결정합니다. 우선순위 조정도 대표의 판단을 거쳐야 합니다. 이 상태에서 팀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책임질 수 있는 실행 범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권한은 힘의 과시가 아닙니다.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실행 범위입니다. 맡은 책임과 기대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보장한 의사결정과 자원 사용의 범위입니다.


권한은 네 가지로 나뉩니다. 사안을 해석하고 방향을 제안할 수 있는 판단 권한,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결정 권한, 예산과 인력과 도구를 요청하고 배분할 수 있는 자원 권한, 충돌이 생겼을 때 순서를 조정하고 협업을 요구할 수 있는 우선순위 조정 권한입니다.


이 네 가지 중 어느 하나가 빠지면 책임 수행에 구멍이 생깁니다. 책임 없는 권한은 정치가 됩니다. 권한 없는 책임은 희생양 만들기가 됩니다.


세 가지가 함께 있어야 운영 체계가 됩니다

역할과 책임과 권한은 분리해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역할만 있으면 이상론이 됩니다. 이 자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는 알지만, 실제로 누가 끝까지 책임지는지 모릅니다. 역할과 책임만 있으면 부담 구조가 됩니다. 책임은 지워졌는데 실행할 수단이 없습니다. 역할과 책임과 권한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운영 체계가 됩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무엇을 끝까지 맡고,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지가 모두 연결됩니다.


체계가 있어도 문화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구분해야 합니다. 역할·책임·권한을 설계하는 것은 체계입니다. 그리고 그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문화입니다.


책임자가 애매한 것은 체계 문제입니다. 책임자는 있는데 대표가 계속 개입하는 것은 문화 문제입니다. 권한이 문서에 있는데 아무도 쓰지 못하는 것도 문화 문제입니다. 역할 정의가 업무 나열에 그치는 것은 체계 문제입니다.


좋은 조직은 제도가 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설계된 역할·책임·권한의 경계를 실제 행동 속에서 존중하는 조직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 탓으로 흐르지 않고, 설계를 다시 보는 조직입니다.


운영 언어가 생기면 조직이 달라집니다

역할·책임·권한이 명확해지면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대화가 달라집니다. "그건 제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가 아니라, "이것은 제 책임 범위입니다"가 됩니다. "권한이 없어서 못 했습니다"가 아니라, "이 결정은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였습니다"가 됩니다.


조직의 운영 언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언어가 생기면 리더는 모든 결정을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팀원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눈치 보지 않아도 됩니다. 조직은 사람의 에너지를 본질적인 일에 쓸 수 있게 됩니다.


누가 왜 존재하며, 무엇을 끝까지 맡고, 어디까지 결정하는가. 이 세 가지가 명확해지는 순간, 조직은 비로소 사람이 아니라 구조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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