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콜린스가 말하는 진짜 비전의 조건, 핵심가치·목적·BHAG
많은 조직이 비전 수립 작업을 이렇게 합니다. 경영진이 모여 하루 이틀 워크샵을 합니다. 멋진 문장들이 나옵니다. 액자에 담아 사무실 벽에 겁니다. 그리고 그 문장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잊혀집니다.
비전이 작동하지 않는 조직의 공통점입니다. 비전을 문장의 문제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짐 콜린스는 다른 곳에서 시작합니다. 비전은 감성 문구가 아니라 구조물이라고.
콜린스가 말하는 좋은 비전은 세 가지가 맞물린 구조입니다. 핵심가치, 목적, 그리고 BHAG입니다.
핵심가치는 조직이 어떤 기준으로 움직일지를 정합니다. 목적은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합니다. BHAG는 지금 이 시점에 무엇을 향해 힘을 모을지를 정합니다.
이 셋이 분리되면 비전은 공허해집니다. 핵심가치만 있으면 방향 없이 기준만 남습니다. 목적만 있으면 뭉클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BHAG만 있으면 왜 이 목표인지 설명이 안 됩니다. 셋이 붙어 있을 때 비로소 조직의 방향축이 생깁니다.
현장에서 비전 수립 워크샵을 할 때 가장 자주 보이는 실수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한꺼번에 멋진 문장 하나를 만들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나온 문장은 어디서 본 것 같고, 누구의 것인지 불분명하고, 의사결정 기준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콜린스가 가장 명확하게 구분하는 두 가지가 목적과 BHAG입니다. 많은 조직이 이 둘을 섞어 쓰기 때문에 비전이 흐려집니다.
목적은 도달할 수 없지만 계속 끌어당기는 존재 이유입니다. 콜린스는 이것을 안내성에 비유합니다. 항상 저 앞에 있어서 방향을 알려주지만 실제로 도달하지는 않는 것. 조직이 어떤 결정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그래서 목적은 오래가야 합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전략이 수정되어도 목적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BHAG는 다릅니다. 특정 시기에 조직을 집중시키는 대담한 목표입니다. 언젠가 달성 여부를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들었을 때 방향과 야심이 동시에 느껴져야 합니다.
콜린스는 좋은 BHAG의 조건을 이렇게 말합니다. 명확하고, 흥분되며, 목적과 연결되고, 달성 여부를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중요한 것은 마지막 조건입니다. 달성 여부를 분명히 말할 수 없는 목표는 BHAG가 아닙니다. 그것은 방향 선언에 가깝습니다.
실무에서 BHAG를 점검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목표가 사람들을 실제로 들뜨게 하는가. 한 문장으로 바로 이해되는가. 목적과 이어지는가. 몇 년 뒤 달성했는지 아닌지를 분명히 말할 수 있는가. 이 네 가지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써야 합니다.
콜린스가 소개하는 DPR Construction의 사례가 인상 깊습니다. 이 건설회사는 비전 수립을 거의 헌법 제정 회의처럼 진행했습니다.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지향하는지, 어떤 대담한 목표를 향해 갈지를 함께 정리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을 바꾸자" 같은 말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색했습니다. 자기들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정체성에서 출발해 도달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We exist to build great things." 위대한 것을 짓기 위해 존재한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이 조직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가 느껴집니다. 자기다운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쓸 때 가장 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럴듯해 보이려는 욕심입니다. 목적은 다른 회사의 문장처럼 들리면 안 됩니다. 이 조직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문장이어야 합니다.
실무적으로 목적을 찾을 때 유용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하는 조직인가. 그것이 단순 기능을 넘어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답지 않은 멋진 문장을 다 빼면 무엇이 남는가. 그 남은 것이 진짜 목적에 가깝습니다.
콜린스가 이 장에서 짚는 중요한 경고가 있습니다. 창업자형 조직이 흔히 빠지는 함정입니다.
리더 개인이 강하게 비전을 갖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비전이 창업자와 함께 머문다면, 창업자가 현장을 떠나는 순간 회사는 방향을 잃습니다. 반대로 비전이 조직 안에 제도화되면 창업자 이후에도 살아남습니다.
비전이 조직의 재산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비전이 채용 기준이 됩니다. 이 사람이 우리 조직의 가치에 맞는 사람인가. 비전이 승진 기준이 됩니다. 이 사람이 우리 목적을 구현하고 있는가. 비전이 의사결정 기준이 됩니다. 이 선택이 우리의 존재 이유와 맞는가. 비전이 전략 우선순위의 기준이 됩니다. 우리 BHAG에 가까워지는 방향인가.
이것들이 실제로 작동할 때 비전은 벽에서 내려와 현장으로 들어옵니다.
비전 수립 워크샵을 마치고 나면 성취감이 있습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끝낸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콜린스는 그 시점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비전 수립의 끝은 발표회가 아닙니다. 비전이 사람과 결정의 기준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 진짜 시작입니다.
채용 면접에서 핵심가치를 기준으로 후보를 평가하는 첫 날, 전략 회의에서 목적을 기준으로 방향을 조정하는 첫 순간, BHAG를 기준으로 지금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하는 첫 결정. 이것들이 쌓일 때 비전은 조직 안으로 들어옵니다.
비전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하나입니다. 만들고 나서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전은 한 번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호출해야 살아 있게 됩니다.
좋은 비전은 멋진 문장이 아닙니다. 조직이 흔들릴 때 돌아갈 수 있는 중심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