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작은 조직에서는 회의가 많다.
아침 회의, 주간 회의, 팀 회의, 대표 보고, 실무 공유, 긴급 논의, 다시 정리 회의. 일정표만 보면 하루가 회의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외부에서 보면 “이 조직은 소통을 많이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회의는 많고, 말도 많고, 논의도 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의가 많다고 해서 실행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조직은 회의가 많아질수록 더 느려지고, 더 헷갈리고, 더 많이 말하지만 더 적게 움직인다.
나는 이 현상이 단순히 회의가 많아서 생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회의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회의가 무엇을 하기 위한 자리인지 정리되지 않았을 때 문제가 생긴다. 회의는 원래 실행을 대신하는 자리가 아니다. 실행을 돕고, 기준을 맞추고, 다음 행동을 분명히 하기 위한 자리다. 그런데 작은 조직에서는 회의가 자주 “문제 해결의 전부”처럼 취급된다. 회의를 했으니 정리된 것 같고, 다 같이 얘기했으니 방향이 맞춰진 것 같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으니 이제 되겠거니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회의에서 말한 내용이 실행으로 번역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회의가 많아질수록 실행이 약해지는 첫 번째 이유는, 회의가 결론이 아니라 대화로만 남기 때문이다.
논의는 길었지만 무엇이 결정됐는지는 불분명하고, 누가 무엇을 맡았는지 애매하고, 언제까지 어떤 기준으로 끝내야 하는지도 흐릿하다. 그러면 회의는 정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또 하나의 대화가 쌓인 것뿐이다. 작은 조직은 말이 빠르다. 서로 잘 아니까 금방 생략하고, 금방 이해한 것처럼 넘어간다. 그런데 바로 그 생략이 실행 단계에서 공백이 된다. 다들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같은 수준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회의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회의가 실행을 약하게 만드는 두 번째 이유는, 회의가 책임을 분명히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것과 누가 할지를 정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많은 회의가 전자에서 멈춘다. “이 방향이 맞을 것 같아요.” “이렇게 가면 좋겠어요.” “한번 해보죠.” 여기까지는 회의가 활발해 보인다. 하지만 누가, 언제까지, 어떤 수준으로, 무엇을 기준 삼아,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가 정리되지 않으면 실행은 흐려진다. 책임은 애매한데 할 일은 남고, 그래서 그 일은 결국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에게 다시 돌아간다. 대표, 팀장, 혹은 늘 하던 사람이 다시 붙잡게 된다. 실행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행의 무게가 반복적으로 같은 사람에게 쏠리는 것이다.
내가 만났던 한 12명 규모의 조직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매주 회의는 정말 열심히 했다. 문제를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나누고, 서로의 상황을 공유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난 뒤 실제 실행은 자꾸만 늦어졌다. 이유를 들여다보니, 회의 안에서 “무엇을 할지”는 꽤 많이 정리되었지만 “누가 어떤 기준으로 끝낼지”는 정리되지 않았다. 팀원들은 각자 이해한 대로 움직였고, 대표는 마지막에 다시 확인하느라 더 바빠졌다. 결국 회의는 많았지만 실행은 약한 구조가 굳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게으르지 않았다. 다만 실행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회의 안에 없었다.
회의가 실행을 약하게 만드는 세 번째 이유는, 회의가 사실은 판단을 미루는 장치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작은 조직에서는 회의가 “결정하기 전에 모두의 마음을 한 번 더 보는 자리”가 된다. 서로의 눈치를 보고, 불편한 책임을 피하고, 정면으로 결론내리기 어려운 것을 조금 더 논의로 미룬다. 그러면 회의는 계속된다. 더 많은 정보를 모으고, 더 많은 의견을 듣고, 더 많은 상황을 살피자고 하면서 결정을 늦춘다. 하지만 실행은 결정을 먹고 자란다. 결론이 늦어질수록 행동은 늦어진다. 그래서 회의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조직은 판단보다 대화에 익숙해진다.
이때 사람들은 보통 실행이 약한 이유를 구성원의 태도로 돌린다.
“왜 바로 안 해요?” “왜 자꾸 미루죠?” “왜 이렇게 결단력이 없죠?” 물론 실제로 그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행이 약해지는 조직은 대개 개인의 의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실행이 약한 조직에서는 애초에 실행이 잘 정의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회의에서 말만 하고 끝났고, 어떤 일은 담당이 애매했고, 어떤 일은 중간 점검이 없었고, 어떤 일은 완료의 기준이 없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마음먹고 실행하려 해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불명확하다. 이 상황에서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은 구조를 바꾸는 말이 아니다. 사람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말에 가깝다.
회의가 실행보다 앞서 갈 때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회의가 조직의 실제 언어를 대체해버린다는 점이다.
실행이 강한 조직은 말보다 기록이 선명하고, 기록보다 기준이 선명하다. 반면 회의가 과도한 조직은 자꾸 말이 기준이 된다. 그날 누가 더 강하게 말했는지, 대표가 마지막에 어떤 톤으로 말했는지, 분위기가 어디로 기울었는지가 결론처럼 남는다. 그러면 회의는 소통의 장이 아니라, 사실상 분위기와 권위가 결론을 대신하는 장이 된다. 실행은 그 분위기를 다시 해석해야 하니 느려질 수밖에 없다.
나는 실행이 약한 조직에서 자주 보이는 중요한 착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다들 바쁘다”는 사실이 곧 “조직이 잘 돌아간다”는 뜻으로 오해되는 것이다. 회의가 많고, 메신저가 바쁘고, 할 일이 많아 보이면 조직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움직임과 실행은 다르다. 움직임은 많아도 성과가 없을 수 있고, 말은 많아도 결과가 없을 수 있다. 실행은 단지 분주함이 아니라, 결론이 행동으로 바뀌고 그 행동이 다시 검증되는 순환이다. 회의가 많아도 이 순환이 없다면, 조직은 계속 말의 밀도만 높아질 뿐이다.
회의가 많은 조직일수록 자주 놓치는 것은 회의의 끝이다.
좋은 회의는 끝이 분명해야 한다. 무엇이 결정되었는지,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 언제 다시 볼 것인지, 무엇이 완료 기준인지가 남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회의는 끝나면서 다시 시작된다. “이건 좀 더 보고요.” “그건 다음 회의에 다시 얘기하죠.” “대표님이 한 번 더 보시고요.” 이렇게 되면 회의는 정리의 장이 아니라 보류의 장이 된다. 보류가 많아질수록 실행은 더 약해진다. 왜냐하면 사람은 보류된 일을 자신의 일로 완전히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가 실행을 살리려면, 회의 안에 반드시 몇 가지 질문이 들어가야 한다.
무엇을 결정하는가.
누가 책임지는가.
무엇이 끝났다고 볼 것인가.
언제 다시 확인하는가.
대표가 봐야 하는 일인가, 아니면 팀이 먼저 끝내야 하는 일인가.
이 질문들이 회의에서 분명해질 때 비로소 회의는 말이 아니라 실행의 전 단계가 된다. 반대로 이 질문이 없으면 회의는 좋은 이야기로 남는다. 좋은 이야기는 사람을 잠깐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꾸준한 실행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나는 이 문제를 볼 때마다, 작은 조직이 왜 회의를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회의에 지치는지 이해하게 된다.
회의는 안전하다. 결정을 미루게 해주고, 책임을 분산시켜 주고, 당장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준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실행되지 않은 회의는 결국 사람을 지치게 한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같은 문제를 다시 꺼내고, 지난번에도 했던 말을 또 하게 되니까. 사람들은 회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회의에 지치는 것이다.
그러니 회의가 많고 실행이 약한 조직을 볼 때 나는 먼저 사람을 탓하기보다 구조를 본다.
회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회의에서 무엇이 결정되고 무엇이 보류되는지, 보류된 일은 어디로 가는지, 실행의 기준은 언제 명확해지는지. 이 흐름이 정리되어 있지 않다면 회의는 많아질수록 조직을 더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흐리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은 많이 말하는데, 일은 적게 움직이고, 책임은 다시 흐려진다. 그래서 이 문제는 회의의 양이 아니라 회의의 역할을 다시 묻는 데서 풀려야 한다.
회의는 본래 실행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행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회의 안에서 결론이 나고, 결론이 책임이 되고, 책임이 실행이 되고, 실행이 다시 검증될 때 조직은 조금씩 움직인다. 이 순환이 끊기면 회의는 많아도 실행은 약해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주 모였는가”가 아니라 “모인 뒤 무엇이 실제로 움직였는가”이다. 작은 조직일수록 이 질문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회의의 공백은 곧 사람의 피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회의를 완전히 줄이는 것이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회의를 더 잘 쓰는 것이다. 말이 아니라 결정이 남도록, 분위기가 아니라 기준이 남도록, 논의가 아니라 행동이 남도록. 그렇게 바뀌어야 회의는 조직을 소모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실행을 생기게 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회의는 많은데 실행이 약하다”는 오래된 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