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는 왜 늘어나는데 방향은 왜 흐려지는가

4장.

by 경영 컨설턴트 Tim

작은 조직이 성장할수록 가장 먼저 늘어나는 것 중 하나가 KPI다.
매출도 봐야 하고, 전환율도 봐야 하고, 채널별 성과도 봐야 하고, 팀별 지표도 봐야 한다. 처음에는 하나였던 숫자가 점점 여러 개로 쪼개지고, 하나의 목표를 설명하기 위해 더 많은 수치가 붙는다. 그렇게 보면 조직이 점점 더 정교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전보다 더 많이 보고, 더 자주 확인하고, 더 세밀하게 관리하니까. 숫자가 많아질수록 조직은 더 선명해질 것 같고, 덜 감으로 갈 것 같고, 덜 흔들릴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는 자주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지표는 늘어났는데 방향은 더 흐려진다. 다들 숫자를 보고 있는데 무엇이 중요한지 더 헷갈리고, 서로 같은 화면을 보고도 다른 결론을 내린다. KPI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조직은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를 잃어버리기 쉽다. 숫자가 많아진다고 기준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준이 정리되지 않은 채 숫자만 늘어나면, 사람들은 더 많은 데이터를 갖고도 더 적게 이해하게 된다.


이 문제는 KPI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KPI는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지표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정리되지 않은 채 도입될 때 생긴다. 어떤 숫자는 결과를 보여주고, 어떤 숫자는 선행 신호를 보여주고, 어떤 숫자는 기능별 책임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이 역할이 뒤섞이면 KPI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언어가 아니라,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목록이 된다. 숫자를 보는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사람들은 숫자를 읽는 데 익숙해질 뿐 숫자를 바꾸는 데는 약해진다.

저는 실제로 이런 상황을 꽤 자주 봤습니다.

브랜드 성과를 보여주는 숫자와, 팀이 실무에서 관리해야 하는 숫자가 같은 층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첫 구매 전환율, CAC, 공헌이익률, 객단가 같은 지표가 브랜드 성과로 이야기되는데, 동시에 콘텐츠 팀이나 몰 운영팀이 당장 책임져야 할 행동 지표까지 같은 방식으로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면 팀은 질문하게 됩니다. “이 숫자 중 무엇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가요?” 그런데 답이 분명하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자기에게 익숙한 숫자만 보게 됩니다. 대표는 대표가 중요하게 보는 숫자를 보고, 팀은 팀이 바꿀 수 있는 숫자를 보고, 서로는 서로가 보고 있는 숫자가 왜 다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멀어집니다.


KPI가 늘어날수록 방향이 흐려지는 첫 번째 이유는, 지표의 계층이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숫자는 회사 전체의 성과를 보여주고, 어떤 숫자는 그 성과를 움직이는 핵심 동인을 보여주며, 어떤 숫자는 각 팀이 실제로 책임져야 할 행동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이 계층이 없이 숫자만 나열되면, 모든 지표가 다 중요해 보이기 시작한다. 문제는 모든 것이 중요해 보이는 순간, 실제로는 아무것도 우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은 중요한 것이 여러 개일 때 더 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부터 봐야 할지 몰라 멈추기 쉽다.


두 번째 이유는, 숫자의 의미가 조직 안에서 통일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KPI라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대표는 전체 흐름을 보고 싶어 하고, 팀장은 팀의 운영을 보고 싶어 하고, 실무자는 당장 바꿀 수 있는 행동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차이가 조율되지 않으면 지표는 같은 숫자, 다른 언어가 된다. 누군가는 “좋아졌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이 숫자는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고 느낀다. 결국 숫자는 연결의 도구가 아니라 해석의 분열을 만든다. KPI가 많아졌는데 방향이 흐려지는 이유는, 숫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숫자의 언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KPI가 실행의 기준이 아니라 평가의 수단으로만 쓰일 때다.
지표는 원래 사람을 몰아세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조직에서는 숫자가 점검보다 평가에 더 많이 쓰인다. 그러면 사람들은 지표를 보는 순간 방어적으로 변한다. 왜 떨어졌는지 설명해야 하고, 왜 올랐는지 증명해야 하고, 숫자 앞에서 자기 방어를 해야 한다. 그때 KPI는 실행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불안의 원천이 된다. 방향은 더 선명해지지 않고, 오히려 지표를 피하려는 태도만 커진다.


이런 현상은 KPI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것 같아 보여도, 실제로는 지표의 목적이 흐려져서 생긴다.
지표는 크게 세 가지 역할 중 하나를 가져야 한다. 회사 전체의 성과를 보여주거나, 그 성과를 움직이는 핵심 동인을 보여주거나, 기능별로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한 화면에서 섞이면, 숫자는 많지만 말은 적어진다. 사람들은 숫자를 외우게 되지만, 숫자가 왜 중요한지는 모르게 된다. 그러면 KPI는 살아 있는 운영 언어가 아니라, 보고용 장식으로 변한다.


제가 만났던 한 10명대 조직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대표는 전사 지표를 보고 싶어 했고, 팀장은 실무 지표를 관리하고 싶어 했고, 팀원들은 그 숫자들이 자신의 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의에서는 숫자를 확인했지만, 그 숫자를 통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는 잘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KPI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표는 “성과가 어디서 움직이는가”를 묻고 있었고, 팀장은 “실무에서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를 묻고 있었고, 구성원은 “이 숫자가 내 오늘의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질문이 다르면 같은 KPI도 전혀 다른 무게로 느껴집니다.


KPI가 늘어나는데 방향이 흐려지는 네 번째 이유는, 숫자가 행동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KPI는 그 자체로 행동을 바꾸게 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조직에서는 숫자를 확인하는 것과 숫자를 움직이는 행동 사이가 끊겨 있다. 숫자는 잘 보지만,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남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환율이 떨어졌다면 어떤 콘텐츠를 바꿔야 하는지, 어떤 랜딩을 수정해야 하는지, 어떤 메시지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지가 함께 떠올라야 한다. 그런데 숫자만 있고 행동 언어가 없으면, KPI는 그저 결과를 기록하는 표가 된다. 결과는 보이는데 개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숫자를 보면서도 막막해진다.


이럴 때 작은 조직은 자주 한 가지 착시에 빠진다.
숫자가 많아질수록 더 잘 관리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관리의 본질은 숫자의 개수가 아니라, 숫자가 조직 안에서 어떤 대화를 가능하게 하느냐에 있다. 어떤 숫자는 방향을 묻고, 어떤 숫자는 원인을 묻고, 어떤 숫자는 실무의 다음 행동을 묻는다. 이 구조가 정리되지 않으면 KPI는 많아도 대화는 산만해지고, 보고는 많아도 판단은 흐려진다. 결국 숫자는 많아졌는데,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합의는 약해진다.

나는 KPI를 설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숫자를 더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덜어내는 일일 때도 많다고 생각한다.

정말 필요한 지표가 무엇인지, 회사 전체가 봐야 할 숫자가 무엇인지, 핵심 동인을 보여주는 숫자가 무엇인지, 각 팀이 책임져야 할 숫자가 무엇인지를 나누어야 한다. 모든 숫자가 다 중요한 순간은 거의 없다. 오히려 너무 많은 숫자는 사람을 흐리게 하고, 결국 무엇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KPI는 양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방향이 흐려지는 조직에서는 숫자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더 자주 숫자와 역할이 연결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다.
대표는 어떤 숫자를 통해 회사를 보고, 팀장은 어떤 숫자를 통해 팀을 보고, 실무자는 어떤 숫자를 통해 오늘의 행동을 조정하는지가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이 층위가 정리되면 KPI는 조직을 압박하는 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자리의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보게 하는 언어가 된다. 반대로 이 층위가 없으면 KPI는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아무도 같은 방식으로 읽지 못하는 숫자가 된다.


나는 이 장에서 결국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다.
KPI는 많아질수록 좋지 않다. 중요한 것은 더 많아지는 숫자가 아니라, 더 분명해지는 구조다.
숫자는 방향을 대신하지 못하고, 방향은 숫자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KPI가 조직을 살리려면, 어떤 숫자가 왜 존재하는지, 그 숫자가 누구의 판단을 돕는지, 그 판단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지까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서 KPI를 볼 때마다 나는 다시 묻게 된다.
이 숫자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 숫자는 누가 봐야 하는가.
이 숫자는 어떤 행동을 바꾸어야 하는가.
이 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KPI는 비로소 방향을 흐리게 하는 장식이 아니라 방향을 세우는 도구가 된다.

작은 조직이 KPI를 늘릴수록 오히려 더 흐려지는 이유는,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숫자의 역할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
역할과 책임은 왜 자꾸 겹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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