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하는 당신에게
일요일 밤입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말, 나는 도대체 뭘 한 거지?"
컨설턴트로서, 리더로서, 늘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주말에도 책을 읽어야 하고, 글을 써야 하고, 강의를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번 주말은 계획처럼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일요일 밤이 되었네요.
"시간 너무 아깝다. 후회된다. 왜 이렇게 살았지."
하지만 역사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인류를 이끈 위대한 지성들도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그 시간을 낭비가 아니라 전략으로 정의했다는 점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얼룩무늬 도끼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자기관리의 화신입니다. 그는 13가지 덕목을 정하고 매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자신을 관리했습니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평정, 순결, 겸손입니다.
그런데 프랭클린은 자서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항목들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다고 하죠. 특히 '질서' 항목은 거의 지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일화를 소개합니다.
어떤 손님이 대장장이에게 도끼를 거울처럼 갈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대장장이는 숫돌에 도끼를 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힘들었습니다. 한참을 갈아도 얼룩덜룩한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손님은 말했습니다. "그냥 얼룩덜룩한 게 더 낫군요. 이대로 쓸게요."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날카로움은 유지된다."
우리는 완벽한 주말을 보내려고 합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완벽하게 실행하려 합니다. 하지만 계획을 못 지켰다고 자책하며 멈춰 서지 마십시오. 얼룩덜룩한 상태로 월요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예 포기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붓을 든 정지 화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이상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벽만 쳐다보고 붓질을 한 번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수도원장은 화가 났습니다. "왜 일을 안 하고 멍하니 서 있는 거요?"
하지만 다빈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재는 때때로 가장 적게 일하고 있을 때 가장 많은 일을 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노동만 인정합니다. 글을 쓰고, 코드를 치고, 회의를 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것만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 고민하는 것, 심지어 멍하니 있는 것도 일입니다. 이것을 비가시적 노동이라고 부릅니다.
다빈치가 벽을 쳐다보고 있을 때, 그의 뇌는 멈춰 있지 않았습니다. 무의식은 정보를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색과 구도와 표정을 조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붓을 들어 단숨에 그려냈습니다.
우리가 드라마, 영화, 유튜브 등을 보고 있을 때,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정보를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휴식은 통찰이 떠오르기 위한 필수적인 잠복기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B급 유머 책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노예 해방 선언이라는 엄중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국무회의가 열렸습니다. 장관들은 긴장한 얼굴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링컨은 회의 시작 전에 우스꽝스러운 유머 책을 꺼내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B급 유머였습니다. 장관들은 당황했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이럴 때입니까?" 하지만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웃지 않는다면, 나는 이 압박감에 죽고 말 것이다.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웃는다."
우리는 쓸모없는 쾌락을 죄악시합니다. 유튜브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게임을 하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뇌의 긴급 냉각 장치입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달립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뇌가 경고를 보냅니다. "더 이상은 안 돼. 멈춰야 해." 그때 우리는 무의미한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그것이 죄책감을 느낄 일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보낸 시간은 번아웃을 막기 위한 뇌의 생존 본능이었습니다. 죄책감 대신 냉각 완료 버튼을 누르십시오.
윈스턴 처칠의 벽돌 쌓던 10년
윈스턴 처칠은 영국의 전설적인 총리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암흑기가 있었습니다. 정치 생명이 끊기고 백수로 지낸 10년입니다. 이것을 광야의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그 10년 동안 처칠은 무엇을 했을까요. 시골에서 벽돌을 쌓고 그림만 그렸습니다. 세상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위대한 정치가가 벽돌이나 쌓고 있네." 하지만 처칠은 훗날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지난 모든 삶은, 오늘을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했다."
과거는 고정 비용이 아닙니다. 해석에 따라 변하는 가변 자산입니다. 주말의 잉여 시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자산입니다. 내일 업무에서 요즘의 트렌드 하나를 인용하는 순간, 우리의 주말은 시장 조사가 됩니다.
처칠이 벽돌을 쌓던 시간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총리가 되어 나치와 싸울 때 필요한 인내심을 기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시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언젠가 우리가 필요로 할 통찰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때로는 얼룩덜룩하고, 멍하니 있으며, 실없이 웃고, 딴짓을 합니다. 그 모든 비생산성이 모여,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인간적이고 창의적인 해답을 내놓습니다.
프랭클린은 완벽하지 못했고, 다빈치는 멍 때렸고, 링컨은 유머 책을 읽었고, 처칠은 벽돌을 쌓았습니다. 그들은 위대했지만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불완전함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밤은 편안히 잠들으십시오. 역사가 보증합니다. 우리의 주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