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ope vs. Hopefully
올해 초, 부모님 댁에서 나의 어린 시절 앨범을 꺼내와 정리한 적이 있었다. 요즘은 스마트폰 덕분에 사진촬영이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지만, 오래전 그땐 사진 한 장을 내 눈으로 보려면 금전적, 시간적 수고로움이 뒤따르는 게 필수였던지라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사진들을 보면 이들이 좀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사진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서 갓 태어나 누워 있는 모습부터 걸음마를 떼던 순간, 그리고 유치원 친구들과 장난스럽게 웃던 모습 등 오래된 사진들은 나를 그 시절로 잠시 데려다주었다. 사진 속 나는 늘 웃고 있었고, 그 곁에는 언제나 바쁘셨지만 정성껏 나를 챙겨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다.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해내셨을까’라는 의문이 들 만큼, 어머니는 그야말로 슈퍼우먼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강했고, 결국 어머니의 몸은 무리한 시간의 흔적을 감당하지 못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큰 수술을 겪으신 이후, 크고 작은 불편함들이 조금씩 어머니를 찾아왔다. 급기야 최근에는 호흡 곤란과 어지럼증이 심해져 여러 병원들을 찾으셨고, 결국 심장 시술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관련 시술에 대한 설명과 영상을 찾아 헤매며 불안을 달랬다. 어머니는 부담감을 느끼셨지만, 결국 시술을 받기로 결정하셨다.
입원 전날, 나는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릴 겸 초밥과 간식을 사서 부모님 댁을 찾았다. “너무 예뻐서 먹기가 아깝구나!” 하며 웃으시는 어머니, “사진 한 장 찍어야겠다” 하며 휴대폰을 꺼내는 아버지를 보며, 내 마음속 어딘가가 흔들렸다. 우리는 수박을 나눠 먹으며 입원 시간과 입원 중 가족들 간 역할 분담을 확인했고, 어머니는 “너희가 있어 든든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밤 집으로 향하며, 나는 수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I hope she will recover soon. — 이것은 나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동시에, 가족 모두가 기댈 수 있는 보다 객관적인 위로가 필요했다. Hopefully, she will.
그 두 문장은 같은 미래를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하나는 내 개인의 마음에서 나온 가장 사적인 기도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모두 붙잡고 싶은 공통된 희망이었다. 언어는 이렇게 마음의 결을 나누어 담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시 한번 속으로 되뇐다.
I hope… hopefu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