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공간을 비우는 일

mind vs. heart

by 루인

이사를 앞두고 조금씩 물건을 정리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최고의 정리는 버리기’라는 말을 되새기며 나 역시 실천해 보려 하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


우선 책이다. 많지 않지만 책꽂이에 꽂힌 책들은 대부분 영어와 음악 관련 서적들로, 대학 시절 사용하던 원서도 몇 권 남아 있다. 그중 정말 다시 펼치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골라, 중고로 판매 가능한 것만 따로 챙겨 서점으로 가져갔다. 상태는 최상이었지만 돌아온 금액은 만 원이 채 안 되었다. 책은 한 번 구입하면 바로 감가상각이 큰 자산임을 새삼 깨닫고 ‘앞으로는 빌려 보자’는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은 옷과 신발 차례다. 평소 슬랙스와 재킷, 질 좋은 스웨터와 카디건, 여유 있는 핏의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그래서일까, 한때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옷들을 철마다 몇 벌씩 샀던 시절의 흔적을 보면 이제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걸 안다. 이러한 철없던 시절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한동안 손이 가지 않았던 스커트와 원피스, 그리고 ‘언젠간 신겠지’라며 두었던 하이힐 몇 켤레도 결국 보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그리하여 상태가 좋은 옷과 신발을 모아 가까운 ‘아름다운 가게’로 향했다. 기부 영수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아 종종 들르는데, 매번 방문할 때마다 기부된 물건들을 정갈하게 정리해 둔 진열대가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 ‘덜 죄책감 느끼는 기부’가 아니라, ‘더 현명한 소비를 위한 다짐’을 다시 한번 했다.


냉장고 속 정리도 빼놓을 수 없다. 단백질과 채소, 과일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는 편이라 늘 달걀, 닭가슴살, 두부, 토마토, 제철 과일과 샐러드용 채소가 자리 잡고 있다. 한때는 마트 배송을 애용했지만, 필요 이상의 구매와 불필요한 포장 쓰레기 때문에 요즘은 퇴근길에 가까운 마트에서 일주일치만 직접 산다. 다만 새로운 음식을 시도할 때마다 필요하다고 사두었던 각종 소스, 양념, 냉동 과일과 야채들이 몇 달, 혹은 몇 년째 냉동실을 차지하고 있다. ‘버려야 하는데’라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포장 분리의 번거로움에 계속 미뤄 왔다. 이번 주말에는 정리를 다 하지 못하더라도, 시작이라도 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물건이 아니라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기분이 든다. 살면서 쌓여온 물건들 속에는 그 시절의 나, 그때의 선택과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넘길 때, 옷 한 벌을 접을 때마다, '이건 정말 필요해서 갖고 있던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이쯤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머리(mind)’로는 버려야 한다는 걸 알고, ‘마음(heart)’으로는 쉽지 않다고 느낀다는 것을.

mind는 이성의 언어다. 정리의 필요성과 논리를 안다. 하지만 heart는 감정의 자리다. 그 물건에 깃든 추억과 아쉬움을 품고 있다. 그래서 정리는 단순한 정돈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이 합의하는 과정이다.


이번 이사는 단순히 공간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정비하는 기회다. 물건을 비우며 조금 더 단단해지고, 마음을 정리하며 조금 더 가벼워진다. mind가 정리의 이유를 만들고, heart가 정리의 의미를 완성하는 순간. 그때 비로소, 나는 다음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될 것이다.


We know with our mind what we should let go of, but it’s our heart that hesitates to do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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