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food vs. comfort food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번 주, 드디어 올해 첫눈이 내렸다. 퇴근길 차창 밖으로 떨어지는 눈을 처음 마주했을 땐 대부분 물에 녹아 사라지는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발이 굵어지며 금세 주변을 하얗게 덮었다. 늦은 밤임에도 아이들과 부모들이 밖으로 뛰쳐나와 눈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이렇게 추위가 서서히 스며드는 계절이 오면, 누구나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며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드는 ‘소울푸드’ 하나쯤 떠오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영어로도 soul food라고 번역하곤 하지만, 우리가 의미하는 ‘위로가 되는 음식’은 comfort food에 더 가깝다.
soul food는 미국 흑인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담은 전통 요리를 의미한다. 실제로, fried chicken and cornbread are classic soul foods. 반면, comfort food는 말 그대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개인적인 위안의 음식을 뜻한다. 그래서 ‘나만의 소울푸드’를 영어로 말하고 싶다면 comfort food가 훨씬 자연스럽다. 이를테면, tteokbokki has always been my comfort food.
나에게 오랫동안 comfort food였던 것은—아마 한국인의 상당수가 그렇듯—떡볶이였다. 어릴 적엔 길거리 음식을 거의 먹어보지 못했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친구들을 따라 처음 떡볶이를 맛보게 되었다. 매콤한 국물에 튀김을 찍어 먹고, 순대 한 점을 더해 먹는 그 조합은, 어린 나에게 처음으로 ‘세상에 이런 맛이 있었구나’를 깨닫게 해 준 충격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떡볶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도시락을 두 개씩 먹어도 허기지던 시절, 학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야자를 시작하기 전 학교 앞 즉석 떡볶이집에서 사리를 잔뜩 넣어 먹고, 마지막엔 밥까지 비벼 싹싹 긁어먹던 나날들. 아마 그때의 나는 맛보다는 위로가 더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다이어트를 하며 한동안 멀어졌던 떡볶이가 교직을 시작하면서 다시 나의 comfort food로 돌아왔다. 퇴근 후 떡볶이 소스에 튀김과 순대를 찍어 먹는 그 한 끼가, 학교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눈 녹듯 사라지게 해주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떡볶이가 그리워지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분식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자극적인 탄수화물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우연히 또 하나의 떡볶이를 만났다. 부동산 사장님이 맛집이라고 추천할 만큼 이름난 집이었고, 실제로 주말이면 가게 앞 인도까지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개인적으로 굳이 사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주말에 가족들이 집들이를 오면서 “그 집 떡볶이 한번 먹어보자”는 말에 우리는 떡볶이, 튀김, 순대를 식탁 가득 펼쳐놓고 만 삼천 원대의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빨간 국물 한 입에 느껴지는 강렬한 매운맛과 단맛, 그리고 묘한 중독성.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나로서는 몇 입 만에 물을 벌컥 마셔야 했지만,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는지 알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떡볶이는 내 삶에서 다양한 얼굴로 존재해 왔다.
어릴 적엔 단순한 맛의 기쁨,
성인이 되어서는 잠시 세상과의 연결을 끊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은신처,
지금은 건강을 위해 거리를 둬야 하는—그래도 여전히 애틋한—기억 속 위로의 음식.
나는 더 이상 떡볶이를 자주 찾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comfort food로 남아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어쩌면 우리의 삶을 든든히 지탱해 주는 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이렇게 조용히 마음 한 조각을 데워주는 이런 작은 음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