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한 맛을 지나 깊은 맛으로

salty vs. savory (plus umami)

by 루인

많은 사람들이 퇴근 전후로 가장 자주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는 아마도 “오늘 저녁 뭐 먹지?”일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학생들과 부대끼고 나면, 집에 돌아와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저녁 메뉴를 고를 때의 기준은 늘 비슷하다. 간단할 것, 뒤처리가 빠를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몸에 부담이 없을 것.


점심으로 먹는 학교 급식은 청소년의 성장에 맞춰 구성되다 보니 고기, 튀김, 면처럼 열량이 높은 음식이 많은 편이다. 한때는 그 균형을 맞추겠다는 명분으로 저녁마다 샐러드와 방울토마토, 삶은 달걀을 먹고 한 시간씩 운동을 하며 몸을 가볍게 유지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자주 장을 봐야 했고, 그 번거로움 앞에서 샐러드는 점점 저녁 식탁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래 지켜온 나만의 원칙이 있다. 배달 음식은 피할 것,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정크푸드는 되도록 먹지 않을 것. 그리고 최근 들어 하나를 더 보태자면, 생야채가 아니더라도 삶거나 볶은 야채를 자주 먹자는 다짐이다.


이러한 결심이 굳어진 계기는 얼마 전 부모님과 함께 간 보리밥 한식 뷔페였다. 나물 반찬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 매번 재료 손질과 조리를 힘들어하시자, 동생이 집 근처에 괜찮은 곳이 있다며 찾아낸 식당이었다. 문을 연 지 넉 달 남짓이라는 식당에는 열 가지가 훌쩍 넘는 나물과 김치, 제육볶음, 국과 밥이 단정하게 차려져 있었다.


넓은 접시에 이것저것 담아 자리에 앉아 한 입을 먹는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짜지 않다. 그런데 맛있다.' 투박하게 썰린 호박과 어우러진 새우, 마늘이 적당히 익고 간을 맞춘 소금은 과하지 않았다. 그날의 음식은 salty 하지 않았다. 대신 savory 했다.




영어에서 salty는 말 그대로 소금기가 강한 상태를 말한다. 혀가 먼저 반응하는 직선적인 맛이다. 반면 savory는 짭짤한 맛을 너머 재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맛, 짜지 않지만 분명히 “맛있다”라고 느끼게 하는 상태에 가깝다.


The soup is too salty. (이 국은 지나치게 간이 세다.)

The dish is savory and comforting. (이 음식은 담백하면서 묘하게 위로가 된다.)




그날 먹은 나물 반찬들은 분명 후자였다. 부모님도 만족스러워하시며 “여긴 단골 해야겠다”라고 말씀하셨고, 아침을 거르고 갔던 나 역시 밥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배는 든든했지만 속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맛은 savory라는 말만으로도 다 설명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곱씹을수록 살아나는 깊이, 입 안에 오래 남는 여운. 그건 아마 umami였을 것이다.




umami는 일본어에서 온 표현으로, 흔히 ‘감칠맛’이라 번역된다. 짠맛도, 단맛도 아니지만, 음식에 깊이를 더해 주는 맛. 된장, 다시마, 버섯, 발효 음식처럼 시간이 스며든 재료에서 느껴지는 그 묘한 풍성함이다.


This stew has a deep umami flavor from fermented ingredients.

(이 찌개는 발효 재료에서 오는 깊은 감칠맛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음식 취향도 이렇게 변해 왔다. 어릴 때는 자극적인 맛이 좋았다. 짜고 달고 매운 음식이 힘든 하루의 위로였다. 성인이 되어서는 savory 한 음식, 그러니까 과하지 않지만 균형 잡힌 맛에 마음이 갔다. 그리고 요즘은, 몸이 먼저 알아보는 umami를 찾게 된다.


따뜻한 나물 반찬 한 접시를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한다. savory 한 음식은 입에서 맛있고, umami가 있는 음식은 먹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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